노자의 귀
예전에 노태우 대통령은 일본 월간지 '문예춘추'와의 대담에서 자신의 귀에 대해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내 귀가 유난히도 컸다 합니다. 어느 날 할머니 손을 잡고 절에 불공드리러 간적이 있었는데,
나를 본 스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애는 귀가 커서 사람들의 말을 잘 들을 텐데 되도록 말을 많이 듣고
이를 귓속에 잘 간직하도록 하라' 고 말했던 것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 스님의 말씀대로 어른이
되어서도 내 얘기보다 남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는 편입니다."
남의 말을 잘 듣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요, 따라서 귀가 크다는 것은 우리 전통사회에서 긍적적이었다.
한국의 불상이나 관음보살상의 귀가 이목구비의 균형으로 미루어 파격적으로 큰 것도 중생의 괴로움을
많이 듣고 제도와 자비를 베푸는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데 십상이기 때문일 것이다.
신선사상의 원조인 [노자]도 어깨로 받치고 다녀야 했을 만큼 귀가 컸다 한다.
[용비어천가]에 보면, 이태조의 귀도 별나게 컸다고 한다.
"키는 우뚝 곧으며 귀가 큰 것이 뛰어나게 달랐다. 명나라 사신 왕태(汪泰)가 그 뛰어난 풍채에 탄복하며 기이한
귀를 고금에 보지 못하였소"하였다 한다.
귀가 큰 것을 왕상(王像)에 까지 결부시킨 것을 보면 귀가 큰 것을 우리 전통사회에서 좋게 보았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이 세상 공통된 귀 이미지는 아니다.
희랍신화에 나오는 [미다스왕]은 피리 잘부는 [숲속의 신]과 금(琴:악기금)을 잘타는 [태양신]과의 장기시합에서
피리편을 들었다. 이에 화가난 태양신은 그렇게 오판하는 따위의 귀를 인간의 귀로 둘수 없다 하며
나귀 귀처럼 크게 키워 놓았다.
몰골이 말이 아니다. [미다스왕]은 이 큰 귀를 두건 속에 감추고 살아야 했다.
이와 똑같은 유형의 이야기가 [삼국유사]에도 나온다.
신라시대 [경문왕]의 귀가 실정의 응보로 나귀 귀처럼 커졌다.
감투 만드는 사람만이 알고 있다가 그가 나이들어 죽을 즈음에
도림사 대밭에 들어가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라고 소리질렀다.
그 다음부터 바람만 불면 대나무들이 그 말을 읊퍼대는 바람에 성난 임금은 대밭을 베어버린다.
이 동서의 신화에서 임금님의 큰 귀는 오판이나 실정과도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대통령 귀는 후자의 큰 귀가 아니라, 전자의 큰 귀이어야하고 또 그러하리라고 믿고 싶은 큰 귀다.
큰 소리만 듣고 작은 소리는 듣지 못하는 귀나, 가까운 소리만 듣고 먼 소리는 듣지 못하는 귀는
굳이 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