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저희 부부는 한가위를 대비해 벌초를 하려고 조상님 산소를 찾아갔는데,
그때 상황을 말씀드리면 제가 제초기로 풀을 베어놓으면 아내가 갈퀴로 베어놓은 풀을 산소 옆 비탈진 곳에
갔다 버리고 있었습니다.
음력 8월이니 날씨도 아직 후덥지근 하더군요.
그래도 조상님 생각하면서 열심히 벌초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내가 '으악!'하고 소리를 지르더니 냅다
산 아래로 막 뛰어가면서 이러는게 아닙니까?
"냇빼! 냇빼!"
여기서 냇빼라는 말은 쏜살같이 도망가라 이런 뜻이지요.
저는 순간 '아! 이거 무슨 일이 생겼구나' 싶어서 하던 작업을 중단하고 아내를 따라 덩달아 산 아래로
'내빼기' 시작했던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얼마나 정신없이 달렸을까. 앞서 가던 아내가 갑자기 꽥하고 꼬꾸라지더니 몸부림을 치면서
마구마구 땅바닥을 뒹굴기 시작하더라구요. 하는 행동이 예사롭지가 않았습니다.
저는 굴러가는 아내를 따라 뛰어가면서 물었지요.
"뭐꼬? 어잉? 뭔데 그 카나? 으잉?"
그러자 아내가 절 바라보며 그러데요.
"내 좀 살리도, 벌떼한테 당했다. 으... 내 좀 살리도!"
제초기로 풀을 베다 아마도 제가 땅벌 집을 건드린 모양인데, 뒤에 있던 아내가 덤터기를 쓴게 틀림없더라구요.
저는 '이러다 마누라 하나 있는 거 잡겠구나.' 싶은 생각에 계속 굴러가고 있는 아내를 잡아끌고 나무 그늘 밑
시원한 곳으로 데리고 갔지요.
그때야 정신을 차린 아내가 그러데요.
"아이구, 여보, 여기 좀 봐봐, 여기 물렸지? 엉?"
그러면서 웃옷을 들어올리는데, 아닌 게 아니라 들어왔다가 미처 나가지 못한 벌들이 세 마리나 튀어 나오더라고요.
아내의 몸을 찬찬히 살펴보니 등에 세 방, 앞배에 두 방, 얼마나 세게 쏘였는지 벌써 벌겋게 부풀어 올랐더군요.
일단 저는 그대로 놔두면 안되겠다 싶은 생각에 쏘인 상처를 손톱으로 꾹 눌러서 벌침부터 뽑아내고,
마누라에게 뒤로 돌아앉으라고 하고선 등부터 쏘인 자리에 독을 빼기 위해 입을 가져다댔지요.
아니 왜. 흔히들 벌이나 뱀 이런 독을 빼기 위해 입으로 빨아서 피를 뽑아내지 않습니까?
뭐 이상할 거 없잖아요. 게다가 부부잖아요.
그런데 저도 어느 정도 진정이 돼서 주위를 둘러봤는데, 아이고 이게 웬일입니까?
도로 밑에 웬 관광버스 한 대가 서 있고, 그 주변에 벌떼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죄다 나와서 우리를 올려보며
자기네들끼리 손가락질을 하며 웃고 고함치고 난리도 아닌 겁니다.
"어 그림 좋수다! 휙휙!!"
"어머어머, 별꼴이야. 변탠가 봐. 나이도 많이 먹었네? 진짜 별꼴이 반쪽이다. 그치?"
뭐 이러는 아줌마 소리까지 들리며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한적하다 싶은 곳에, 그러니까 바로 저희 부부가 앉아 있는 나무 그늘 아래. 관광버스를 잠깐 세우고 승객들에게
생리적인 볼일 볼 시간을 준 모양인데 우리 부부는 너무 급박한 상황이었는지라 그 소리를 듣지도 못한 거죠.
제가요, 평소에 점잖기로 소문난 남자인데, 대체 이게 무슨 추태냐 이 말입니다.
순간 발가락에 있던 피가 머리 위로 확 솟구치는 느낌이 들면서 도저히 그 자리에 있을 수가 없더군요.
아. 그런데 도망을 가자니 위에는 땅벌이 지키고 있고, 아래엔 사람들이 지키고 있고 진퇴양난, 사면초가.
독 안에 든 쥐 꼴이더라구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할 수 없이 나무 뒤에 바짝 붙어서 그 사람들이
볼일보고 지나갈 때까지 숨죽이며 있었습니다.
아! 이게 정말 마른하늘에 웬 개망신이란 말입니까? 아니 제가 이 나이에 오십다 된 마누라 데리고
백주대낮에 불륜 행각을 벌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제가 그렇고 그런 뭔 변태도 아니고,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란 말입니까?
한참 후 관광버스는 마지막으로 조심하라는 듯 '빵!'하고 경적을 울리며 떠나가더군요
나무 뒤에 숨어서 다 늙은 마누라하고 저는 얼굴 시뻘개져서 매우 어색하게 서 있다가 제가 그랬습니다.
"뭐 하노? 집에 가자, 퍼뜩!"
그래서 벌초고 뭐고 다 때려 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얼굴이 다 뻘게집니다.
벌초하실때 벌, 뱀, 해충 그리고 관광객을 특별히 조심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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