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혈합시다
사회

헌혈합시다

by 림프사랑 2022.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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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뉴스에서 헌혈이 너무 많이 줄어서 응급환자가 수술을 받지 못한다고 하더군요.

그 뉴스를 보면서 저는 너무나 양심이 찔려서 더 이상 저 같은 사람이 없기를 바라면서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하여간 제 나이 스물 두 살 무렵의 일이었습니다.

 

남들은 스물 두 살이다 이러면 꽃다운 나이 가녀린 몸매와 야리야리한 외모 뭐~이런걸 떠올리시겠지만

저는 이쯤에서 강력하게 주장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아니 처녀라고 다 날씬하다는 법 있습니까? 처녀라고 다 야리야리 갸냘픈 몸매를 가져야 한다고

이거 헌법에 쓰여 있는 거냐구요?

하여간 당시 저는 아랫배가 몹시 두둑한 편에다 두루뭉실 그런 매우 복스러운 몸매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출근하려고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인데 요즘도 그렇지만 지하철 근처에 보면

'헌혈을 합시다' 이런 플랭카드 걸린 자동차가 있잖습니까?

그런데 그날도 저 혹시 잡히면 어쩌나 걱정하면서 가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 퉁퉁한 몸매가 뭐 숨긴다고 숨겨지겠습니까?

바로 발각이 됐는데 웬 아주머니 한 분이 가까이 다가와서는 제 팔을 억세게 끌며 그러시더라구요.

 

"어머, 헌혈 좀 하세요. 헌혈 하시면 몸에도 좋고 각종 검사까지 해드려요. 헌혈 좀 하세요. 네?"

물론 저도 헌혈하고 싶지요. 하지만 주사바늘이 몸에 들어가는거 진짜로 무지하게 너무너무 싫어하거든요.

아니, 너무 무서워하거든요. 그래서 사정을 하며 그랬지요.

"어머, 죄송해요. 저 무서워서 못하겠어요."

 

그런데 보통 이러면 대부분은 그냥 넘어가시는데 그날 그 아주머니는 그렇게 간단히 물러서지를 않더라구요.

"어머? 덩치는 이렇게 좋으면서 무섭기는? 괜찮아요. 한번 해보세요.

아가씨 반쪽만한 분들도 다 하고 가시는데요 뭐. 호호호."

심정 무지하게 상하더군요. 아니 제 반쪽만한 사람이 안무서워 한다고

그 두배만한 사람은 무서워하면 안되는 법 있냐구요?

여기서 저 잠깐 또 주장하고 싶은 게 있다 이겁니다.

 

아니 뚱뚱하다고 겁 없고 힘 잘 써야 한다고 이것도 어디 쓰여 있냐구요?

우리요, 뚱뚱해도 힘없고 겁 많은 사람 많아요. 그리고 우리 같은 사람이 힘 잘 쓰면 뭐라고 하는 줄 아세요?

우와! 생긴대로구만, 저 힘 좀 봐! 이러고 힘 못 쓴다고 하면 뭐라는 줄 아세요?

"먹는 거 다 어디로 가냐? 진짜 힘도 못쓰고." 이러시는 거 아니네요.

우리가 뚱뚱한데 뭐 보태준 거 있냐고요?

 

어쨌든 그날 저 어떻게 해서든 이 상황을 벗어나야 하는데 그때 문득 그게 생각나더라구요.

아니 며칠 전에도 제가 이런 광경을 똑같이 봤는데 그때 잡힌 아주머니께서 ' 저 임신했어요.' 하니까 바로 놔주더라구요.

그런데 혹시 안믿어주면 어쩌나. 아직 스물두살인데 임신했다고 하면 안먹힐 텐데.

이러면서도 할 수 없이 그랬거든요.

 

"저기요, 제가 임신을 해서요."

그러자 그 아주머니는 바로 저를 위아래로 한번 쭉 보시더니 이게 웬일이냐구요?

바로 잡았던 팔을 놔주시면서 겸연쩍은 표정으로 이러데요

"어머? 미안해요. 아줌마. 그런 줄도 모르고...죄송해요. 어서가세요."

작전은 성공했지만 기분이 진짜로 무지 찝찔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난게 아니라 그때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는데 그 아주머니 이건 또 웬일이냐구요?

"순산하시고 나중에 좀 들려주세요. 예?"

 

세상에 주변 사람 다 들리게 큰 목소리로 이러는데, 처녀가 순산은 뭔 놈의 순산이냐고요,

하여간 이 일은 이렇게 일단락이 됐는데 그런데 그날 밤, 퇴근을 하고 집에 오니 이게 웬일입니까?

현관을 열어주는 동생 표정이 영 안좋더라구요.

 

"언니, 진짜 너무했다. 엄마 오늘 쓰러졌다가 좀전에 일어났어. 진짜 보기보다 재주도 좋다."

이게 대체 뭔 소리냐구요!

일단 안방에 들어갔는데 저희 어머니 분명히 아침까지 멀쩡하셨는데 머리에 흰 끈을 매고 누우셔서

절 보시더니 바로 옆에 있던 빗자루 잡으시며 그러시더라구요.

 

 

"아이고, 내가 못살아. 니가 뻔뻔스럽게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냐?

아이고, 내가 낳다낳다 저런 걸 다 낳고,

진짜로 내가 콧구녕이 두 개라서 산다. 아이고. 못살아! 오냐, 오늘 너 죽고 나 죽어보자, 엉?"

어머니가 다짜고짜 두들겨 패시는 데 대체 뭔 일이냐구요?

그날 맞으면서도 항변을 해봤지요.

"엄마! 아, 진짜 이유는 말해주고 때려야지." 저희 어머니가 그러시데요.

"이게 그래도 입 있다고 떠들어대네? 오냐. 더 죽어봐라. 오늘 아주 맞아 죽는겨. 엉?"

저는 결국 맞다가 도망쳤잖아요. 그리고 여동생한테 들었잖아요.

 

"언니 임신했다면서? 애 아빠가 정수 오빠라며?"

아니 뭔 소리인지 동생에게 다그치며 그랬지요

"뭔 소리야 진짜. 무슨 임신? 정수는 왜?"

"시치미 떼지마, 오늘 아침에도 정수 오빠랑 같이 출근했다며?

그리고 지하철에서 임신했다고 헌혈도 못한다고 했다며?

옆집 아줌마가 다 봤다는데 시치미를 떼냐? 그리고 정수 오빠도 이미 다 불었어. 언니 뱃속에 있는 애기 아빠라고."

 

허억! 정수가 누구냐구요? 이 인간이 중학교 동창이거든요.

한 동네에서 같이 사는데 오늘 아침에 헌혈차 피해서 가다가 '순산하세요'

그 소리 듣고 난 뒤 우연히 정수와 마주쳤거든요. 그 인간이 그러데요.

"야, 어디 가냐?" 그래서 제가 그랬거든요.

저 평소 정수 진짜로 맘에 안들어 했습니다.

 

"어디 가긴. 회사 간다. 어쩔래?"

"그래, 그럼 잘 가라."

이것이 정수 하고 대화한 전부였거든요.

그런데 바로 이 장면, 이것을 저쪽 멀리서 지켜보는 한 아주머니가 계셨으니 그건 바로 우리 동네에서도

가장 입심이 좋기로 유명한 옆집 아줌마였지요.

 

그날 '순산하세요.'하는 소리에다 정수랑 나누는 대화까지 엮어가며 아주머니는 바로 시나리오를 쓰셨던 거지요.

그리고 볼일 보던 것도 미루시고 부리나케 우리 집에 오셔서 장편 멜로 남녀 상열지사 쓰셨다고 합니다.

그 얘기 듣고 우리 어머니 어떻게 되셨냐구요?

물론 바로 뒤로 넘어가시고 그리고 정신 차리신 뒤 확인을 해야겠다며 정수를 찾아 가시고

그날따라 배가 아파서 일찍 집에 오던 길에 정수는 우리 어머니를 만났던 거지요.

저희 어머니가 그러셨다고 합니다.

"야, 정수야, 너 그게 사실이냐?"

 

"예? 뭐가요?"

"아니, 우리 지선이랑 너 오늘도 만났다면서?"

"예. 그런데요. 왜요?"

정수가 이렇게 대답하자 우리 어머니는 이를 악 무시며 의미심장한 질문을 하신거죠.

"그러면 니 부모님들도 아시냐?"

그러자 정수는, 아무 생각 없이, 오늘 아침에 잠깐 마주친 것을 부모님이 알고 계시냐는 뜻으로 알아들었죠.

"예? 아뇨. 아직은 모르실 텐데 말씀드려야 하나요?"

뭐 이렇게 되물었다가 바로 그 때 헐크처럼 달려드는 우리 어머니 공격을 받았던 거지요.

 

"이놈의 자슥이, 말씀을 드려야 하느냐고?

이게 우리 딸 신세 망쳐놓고 말씀을 드려야 하냐고? 오냐. 오늘 너 죽고 나 살자 

이대로는 내가 못 간다. 이놈아 알았냐? 퍼퍼벅!"

"으윽, 어머니. 말로 하세요."

"퍼퍼벅!"

 

"말은 뭔 놈의 말이여. 이놈아!"

물론 그날 밤 정수에게서 전화가 왔더군요

"야. 진짜. 내가 너무 억울해서 그러는데 니 엄마 왜 그러시냐? 왜 때리냐고? 내가 뭘 잘못했다고 엉?"

그래서 제가 무슨 말을 어떻게 해주겠습니까? 그냥 조용히 말했지요.

'정수야, 많은 것을 알려고 하지 말고 그냥 나를 용서해라."

그리고 어떻게 됐냐구요?

 

그 후 사건은 헌혈소동으로 끝이 났지만, 이유 없이 매 맞은 정수가 가만히 있냐고요.

진단서 끊는다는 등 약 값 물어내라, 밥 사라, 술 사라 하면서 1년 정도 우려먹고 그러다

지금은 그때 그 인간하고 함께 살고 있네요.

뭐 이것도 인연인데 살아보자고 해서 살고 있는 중입니다.

괜히 저처럼 뺀질거리다가 인생 잘못 엮기는 수도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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