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은 사람이다
사회

결국은 사람이다

by 림프사랑 2022. 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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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맨해튼

 

뉴욕 맨해튼...

세상에서 가장 다양한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다.

하지만 군중 속에서 고독은 더 커진다고 했던가?

 

어느 가을, 39세 남자는 여자친구와 헤어진 뒤 외로움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가족도 친구도 없던 그는 망망대해 같은 세상에 구조 신호를 보냈다.

노란 종이 한 장에 자기 전화번호와 간단한 문장 하나를 적어 맨해튼 곳곳에 붙인 것이다.

'뭐든 대화하고 싶은 사람은 저에게 전화하세요. 외로운 제프'

 

그 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단 몇 명의 대화 상대라도 생기길 바라던 그에게 실제 연락을 한 사람은 무려 7만 명.

뉴욕은 물론 영국, 캐나다, 나이지리아, 말레이시아...심지어 한국에 사는 사람들까지도 제프를 찾았다

자신도 외롭다는 하소연과 함께 힘내라는 응원 메세지도 줄을 이었다.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건 사람이다.

 

인간이 경험하는 가장 강렬한 고통과 기쁨은 모두 사람에게서 비롯된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 짝사랑...인간을 시름시름 앓게 하는 고통스런 경험이다.

하지만 인간이 느끼는 가장 강력한 기쁨 또한 사람을 통해 온다.

사랑이 싹 틀 때, 오랜 이별 뒤의 만남, 칭찬과 인정...,그래서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이 치르는

가장 성대한 의식들은 사람과의 만남(결혼, 탄생) 혹은 이별(장례)을 위함인 것이다.

 

왜 이토록 인간은 서로를 필요로 할까?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막대한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바로 생존, 세상에 포식자들이 있는 한, 모든 동물의 생존 확률은 다른 개체와 함께 있을 때 높아진다.

 

물소들은 사자들이 우글거리는 아프리카 초원을 수십 만 마리의 동료들과 함께 횡단한다.

서로 살아남기 위해서... 매가 혼자 있는 비둘기를 습격할 때 성공할 확률은 약80%다. 하지만 다른 친구 10마리와 함께 있을 때는 60%, 50마리와 함께할 때는 10%이하로 성공률이 떨어진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시카고 대학 교수의 오랜 연구에 의하면 현대인의 가장 총체적인 사망 요인은

사고나 암이 아니라 외로움이다.

 

인간의 뇌가 급격히 커진 시기가 있다.

호모사피엔스의 뇌가 급격히 커진 시기는 함께 생활하던 집단의 크기와 맞물려 있다

낯선 이들과의 교류가 증가했고, 이들이 마음속에 숨긴 생각과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더 높은 지능이 필요해진 것이다.

이 처럼 인간을 가장 인간스럽게 만드는 뇌, 한마디로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맺기 위해 뇌가 발달했다는 것이다.

 

호모사피엔스 진화 여정에서 집단으로부터의 소외나 고립은 죽음을 뜻했다.

뒤집어 말하면, 우리의 조상이 된 사람들은 연인과 친구들을 항상 곁에 두고 살았던 매우 사회적인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사회적 인간의 유전자를 받았고, 그것을 통해 '사회적 생존 비법'을 전수 받았다. 

이 '생존 비법 패키지'를 뜯어보면 두가지 중요한 내용물이 나온다.

 

 

하나는 '고통'이라는 경험이다.

 

고통을 경험하지 못하는 동물은 오래 살 수 없다.

다리에 박힌 못이 아프지 않으면 치료하지 않을 것이고, 결국 목숨까지도 잃을 수 있다.

생존에 위협이 되는 작은 불씨를 미리 끄는, 일종의 호루라기 소리가 고통이다.

"TV좀 그만보고 다리 좀 치료해!"라고 뇌가 고함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고통의 정확한 진원지는 다리가 아니라 뇌다.

못이 박힌 순간 뇌의 <전방대상피질>이라는 부위가 활성화되고,

이것이 고통이라는 신호로 바뀌어 우리에게 전달된다.

진통제가 효력 있는 이유는 그 속에 함유된 <아세타미노펜>성분이 <전방대상피질>을 비활성화시키기 때문이다.

치통 때문에 진통제를 먹는 것은 이가 아픈데 반창고는 머리에다 붙이는 격이다.

정말 아픈 곳은 뇌기 때문이다.

 

다리가 잘려나가는 것만큼 인간의 생존을 위협한 것이 집단으로부터 잘려나가는 것이었다.

이 때 뇌는 '사회적 고통'이라는 기제를 사용해 그 위협을 우리에게 알렸다.

외로움, 배신감, 이별의 아픔, 인간관계에 금이 가는 신호가 보일 때 뇌는 이런 마음의 아픔을 느끼도록 했고,

그 덕분에 더 치명적인 고립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

신체적 고통과 사회적 고통, 원인은 달라도 기능은 같다.

 

"너 아직도 TV 보니? 당장 나가서 여자친구 붙잡아!" 사회적 고통이 전하는 메세지다.

그렇다면 손가락이 잘릴 때와 애인이 떠날 때의 고통, 어느 쪽이 더 심할까?

최근 연구들은 두가지 고통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뇌 영상 사진을 보면 신체적. 사회적 고통은 동일한 뇌 부위에서 발생한다.

손이 잘리든, 애인이 떠나든 뇌는 똑같은 곳에서 비상경보를 발동한다. 둘 다 생존을 위협한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는 뜻이다.

 

이 두가지 고통을 줄이는 방법도 동일할까?

몸이 아플 때 우리는 진통제를 먹는다. 그러면 마음이 아플 때도 진통제가 효력이 있을까?

심리학자 [네이든 드왈]과 동료들은 이 가능성을 검증하기 위해 대학생 62명을 모집해 그들이 느낀 사회적 고통의 정도를 21일 동안 기록하도록 했다.

이 기간 동안 한 그룹은 매일 [타이레놀]을 2알씩 복용했고, 통제집단은 아무런 약효가 없는 [흰 알약]을 복용했다.

놀라운 결과가 나온다.

매일  [타이레놀]을 복용한 집단은 통제집단에 비해 시간이 지날수록 일상의 사회적 상처를 덜 느꼈다.

마지막 두통을 없애주듯, 진통제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은 사회적 고통도 덜어준다는 것이다.

 

고통의 역할은 위협으로부터의 보호이다.

뇌의 입장에서는 그 위협이 신체적인지 사회적인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뇌는 비슷한 방식으로 두 종류의 '고통 스위치'를 켜고 끄는 것이다.

혼자가 되는 것이 생존에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연구다.


 

두번째는 '쾌감'이다.

 

고통과 같은 부정적 경험이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면,

긍정적 정서의 기능은 생존에 필요한 자원을 추구하도록 하는 것이다. 

왜 우리는 매일 꼬박꼬박 밥을 챙겨 먹을까? 한마디로 먹는 즐거움 때문이다.

음식을 입에 넣어도 종이 맛밖에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이런 자들은 남에게 고기와 과일을 양보할 것이다.

고매한 인격 때문이 아니라 먹는 쾌감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젠틀맨들은 진화 과정에서 영양실조로 사라졌다.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은 동물들은 탐욕스러울 정도로 먹는 즐거움을 추구했다.

보기에는 썩 좋지 않아도 생존에는 반드시 필요한 모습이었다.

우리 뇌는 일종의 탐지기 같다는 비유를 했다. 이 탐지기는 우리가 생존에 필요한 경험을 하도록 유인하기 위해

신호를 방출하는데, 이 신호는 바로 다양한 모습의 쾌감으로 나타난다.

배고픈 사냥꾼은 눈앞에 토끼가 나타날 때, 토끼 고기가 맛있는 냄새를 풍기며 익어갈 때 한 입 뜯어 먹을 때 행복감을 느낀다. 이런 깨알같은 쾌감들을 흠뻑 느껴야 또 사냥을 나가게 되고, 이렇게 사냥을 꾸준히 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

 

중요한 점은 이 탐지기의 쾌감전구는 선별적으로 켜진다는 것이다.

 

이 탐지기의 쾌감 신호는 생존에 절실히 필요한 자원을 취할 때만 선별적으로 반응해야 한다.

며칠 굶주린 배를 채울때, 꽁꽁 언 몸을 온천물에 담글 때, 이렇게 몸을 보존하는 경험을 할 때 강력한 쾌감이 발생한다.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 확보해야 했던 또 하나의 절대적인 자원이 있다.


 

바로 '사람'이다

 

먹는 쾌감을 느껴야 음식을 찾듯 사람이라는 절대적 생존 필수품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우선 인간을 아주 좋아해야 한다.

타인을 소 닭 보듯 바라보는 사람에게 친구나 연인이 생길 리 없다.

이런 '사회적 영양실조'를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왕성한 '사회적 식욕'을 갖는 것이다.

사람은 사회적이며 이 사회성 덕분에 놀라운 생존력을 갖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의 뇌는 온통 사람 생각 뿐이다. 희로애락의 원천은 대부분 사람이다.

또 일상의 대화를 엿들어 보면 70%가 다른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고 한다.

 

행복감을 발생시키는 우리 뇌는 이처럼 사람에 '중독'되어 있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

그래서 사회적 경험과 행복은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다.

사회적 경험이 행복에 중요한 것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 행복감(쾌감)은 사회적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존재하게 되었다고까지 생각한다.

 

행복을 연구한 사람으로서 중요하고도 확고한 결론은 무엇일까?

 

첫째, 행복은 객관적인 삶의 조건들에 의해 크게 좌우되지 않는다

둘째, 행복의 개인차를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것은 그가 물려받은 유전적 특성(외향성)이라는 성격특질이다.

 

<출처>-[행복의기원:서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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