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5.2kg 우량아로 태어난 아이
"아이에게서 빛이난다"고 엄마가 놀라서 아빠에게 말하자
"진짜네 와우~귀한 아이니 분명 행운을 타고 났을 거야. 너를 삼손이라 부를거야"
부모는 아이가 특별하기를 바랬던 마음으로 <삼손>이란 이름으로 특별하게 불렀는데 하지만
부모의 기대와는 달리 성장하면서 학업에 소홀한채 각종 아르바이트에만 전념하며 시간을 보냈던 <삼손>
1950년 남북전쟁이 발발하고 당시 미국은 한국전쟁이 시작된지 이틀만에 한국전쟁에 참전을 결정한 상태였습니다.
냉전시기로 징병제를 실시했던 미국은 150만명이 넘는 미군을 파견하려고 했고, 삼손에게도 징집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삼손>은 신병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까지 완료했습니다.그리고 한국행 비행기에 올라갈 날만 기다리고 있었죠.
그런데 마침내 내일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다는 날 선임하사관이 차트를 보면서 물어봅니다.
"자네 수영선수였나?"
"네, 고등학교 때 수영선수였습니다. 인명구조요원 아르바이트도 한 적이 있습니다."
"자네 한국행 열외야"
"네! 네?"
갑자기 열외라는 말에 놀라서 다시 물어보는 <삼손>
"여기서 훈련병들에게 수영강습을 실시한다! 기지에 남도록!"
뜻밖에도 삼손은 한국행이 취소됩니다. 수영선수와 인명구조요원 아르바이트 경험으로
기지에서 수영지도병으로 복무할것을 제안받은 <삼손>
"와우~스페셜 럭키 데이! 하나님 감사합니다."
집에서 출퇴근하며 2시간 거리의 훈련소의 수영지도병으로 근무하고 주말에는 나이트클럽 경비원 아르바이트까지
하게 된 삼손은 일요일에는 군수송기에 숨어들어 시애틀에 있는 여자친구까지 만나러간 삼손...여자 친구집에서
머물다가 저녁 자정시간이 되버립니다.
군대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 늦어버린 삼손은 아침까지 돌아가기위해 서둘러 나오지만 마지막 군수송기를 놓쳐버린
그는 군인신분에 정해진 시간에 복귀하지 못하면 처벌은 피하기 힘든 상황이 되고 맙니다.
그런데 기지가 있는 샌프란시스코를 향해 이륙할 예정인 폭격기가 눈에 띱니다.
"제발 저도 태워주세요,제발요 !"
"신병 이게 무슨 비행기인줄 알아? 군 무기라고! 1인승이라 태워줄 자리도 없어"
"공군 프란시스 앤더슨? 제가 태어난 병원이름도 프란시스예요! 이건 운명이예요."
"당신이 절 태워주실 운명! 당신이 제 은인이 되어주실 운명"
말솜씨가 탁월했던 그는 폭격기 뒷공간에 기적적으로 타게 됩니다.
역시 행운은 내편이야! 하고 자만하고 있던 사이...
폭격기가 날아 오른지 얼마 안있어 갑자기 엔진 고장으로 추락하고 맙니다.
결국 조종사와 태평양 한가운데 비상착륙을 시도! 다행히 두 사람은 구명보트에 오르게 됩니다.
"어쨌거나 진짜 살았네! 제가 운 하나는 진짜 끝내준다니까요."
"그런것 같네. 동쪽으로 5km만 가면 샌프란시스코 기지에 도착할거야"
그런데 갑자기 거친파도가 구명보트를 덮쳐서 구명보트가 흔들거리자 바다에 빠져버린 삼손
짙은 안개로 한치 앞이 안보이는 바다, 만약 동쪽이 아닌 반대편 서쪽으로 갈 경우 태평양 한 가운데서
목숨을 잃게 되는 절대절명의 선택의 기로에 놓였습니다.
"늘 운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은 아닌가봐...신이시여 한 번만 도와주세요.!"
결국 모든것을 운에 맡긴채 헤엄을 치기 시작한 삼손
"더 이상 팔다리가 움직이지 않아...틀렸어 난 이제 죽을 거야"
절망적인 상태에서 모든것을 포기하려던 그 순간
"빛이다"
멀리서 샌프란시스코 불빛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가까스로 구조된 삼손
그는 병원에서 치료받은 후 무사히 복귀합니다. 2년후 제대한 그는 경비원과 주유소 직원으로 아르바이트 생활을
다시 시작합니다. 어느 날 우연히 군대에서 함께 복무한 동료를 만나게 되고 배우 오디션을 보지 않겠느냐는 동료의
주선으로 오디션에 합격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가 출연한 영화는 영화관에도 걸리지 않았던 급이 낮은 영화
조연과 단역으로 전전한 후 1963년 이탈리아에서 미국 수출용 영화로 서부극을 제작하는데 주연자리에 기회가 옵니다.
이탈리아식 서부극으로 저예산에 미국이 아닌 스페인에서 촬영을 한다는 소리에 많은 배우들에게 거절 당하고
삼손이 어부지리식으로 거머쥔것! 그런데 이 영화가 그 유명한 <황야의 무법자>였다 그 주연배우가 바로
<클린트 이스트우드>였던 것입니다.
1964년 이탈리아에서 첫 개봉한 <황야의 무법자>는 예상외의 흥행을 기록하고 전 세계적 5천만 달러(당시 650억)
이상의 흥행대박 수익을 얻기시작합니다.
이 영화를 기점으로 스타가 된 클린트 이스트우드
이후 그는 총 63편의 영화에 출현했고 영화감독에도 도전 <용서받지 못한자>,<밀리언 달러 베이비>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두번이나 수상한 명감독이 됐는데 "본인의 경험을 늘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는 클린트"
부모의 기대는 학업을 열심히 해서 그 쪽으로 성장하길 바랬지만 다양한 아르바이트 경험이 그의 자본이 된 클린트!
폭격기 추락사고 경험을 살려 영화를 연출한 것이 바로 허드슨강에 비상착륙한 여객기실화로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이라고 합니다.
삼손이라 불리며 행운이 따랐던 사나이! 그는 아흔살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행운은 모든곳에서 최선을 다하면 그 경험이 자신을 따르게 되어 있는 것이 행운입니다.
그의 아르바이트 경험이 소중한 경험의 시작이었다고 평생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그의 모습은
역시 빛이 나는 인물중의 하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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