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탑의 전설
사회

변탑의 전설

by 림프사랑 2022. 1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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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제 나이 스물 둘,그 해 겨울은 너무도 힘들었습니다.

"자자, 쪼그려 뛰기 50회. 맨 마지막 구호는 생략한다. 실시!!"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우리는 구령을 힘차게 외쳤습니다.

 

"하나, 둘, 셋...마흔 여섯, 마흔 일곱, 마흔 여덟, 마흔 아홉!!"

여기까지 하고 멈춰야 하는데 체력이 남아도는 정신 빠진 훈련병 있잖습니까?

그 힘찬 마지막 구호가 들려왔습니다.

 

"쉬ㅡㅡ흔!!"

아마 군대 갔다 오신 분들은 운명교향곡보다 더 처절한 이 마지막 구호를 잘 기억하실 겁니다.

하여간 그때 여름 저 위생병으로 군 입대해서 가을 지나 겨울 올 때까지 진짜 그 넓은 연병장을

구르고 매달리고, 전투가 이보다 더 처절할 수가 있을까요?

 

그때 특히 턱이 앞으로 쭉 빠졌던 그 숙달된 조교가 어찌나 괴롭히던지, 그땐 정말 제가

'군대만 나가봐라. 저 턱주가리 밥그릇 만들어주마.' 하며 이를 갈았는데 제대하고 나니

보고 싶어지는 건 왠지 모르겠습니다.

 

하여간 그렇게 보람찬 하루 일과를 마치면 다들 내무반으로 흩어지는데 원래는 군대에서 절대로

술 마시면 안되거든요. 우리도 잘 알죠.

하지만 모든 인생이 원칙대로만 살면 그 얼마나 삭막하고 힘겹고 빠듯하겠습니까? 안그렇습니까?

 

그때 우리 위생병들은 흔히 링거병이라고 하는 유리병 있잖아요. 거기에 포도당이나 증류수가 

들어 있어야 정상인데 거기에 가끔 일종의 알코올 성분이라고 해야 하나?

왜, 마시면 신경완화현상이 나타나면서 정신상태가 매우 업그레이드되면서 동공 확장시키기도 하는

그 의약품 있잖아요?

 

뭐 어떤 혹자는 이걸 두고 소주라고도 하더군요.

하여간 이걸 링거병에 담아 가지고 다니기도 하고 심심하면 먹기도 했습니다.

그날도 우리는 처절한 훈련을 마감하고 이 생활의 활력소를 조금씩 나눠 마시며 여담을 즐기고

있었는데 그때 갑자기 문이 확 열리더니만 이런 소리가 들리데요.

 

"야 돌팔이! 으음..."

신음소리와 함께 들어오는 선임 하사가 있었으니 '선임 박'이라고 하겠습니다.

그 느닷없는 방문에 우리는 바짝 긴장해서 그 생활의 활력소를 급해 숨기면서

아무 일도 없었던 척 발발 떨고 있는데 그때 선임 박이 고통에 몹시 이글어진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며 그러더라구요.

 

"으...얘들아. 나 당했다. 돌팔이. 내 상태를 좀 봐다오. 으..."

그러면서 바지를 내리는 게 아닙니까.

세상에 바지를 내리다니... 비록 우리가 사나이 중에 사나이 진짜 사나이들끼리라고 하지만

바지를 내리는 추태. 이건 정말 아니지 않습니까?

 

"아니 왜 이러십니까?"

우리가 이러는데 선임 박이 그러더라구요.

으..., 내 엉덩이가...

세상에 딱 보니 뭐에 찔렸는지 그 부위가 찢어져 있고 피가 흘러내리는데 얼마나 처참해 보이는지

그때 선임 박이 다시 고통에 몸을 비틀며 그러데요.

 

"으...돌파리들. 어떻게 좀 해봐. 으..."

그래서 우선 상태 확인이라도 해야겠기에 우리는 그 부위에 마시고 있던 소주를 부어서 소독을 하고

바로 군의관을 부르기 위해 뛰었지요.

 

그런데 나중에 선임 박으로부터 사건개요를 듣고 보니 세상에 경악을 금할 수 없더라구요.

아마 군대 다녀온 분들이라면 다 아실 겁니다.

일명 군대 화장실!!  우리가 가정용으로 쓰고 있는 수세식 그런 화장실이 아니라 그냥 푸세식이라고

해서 그 어떠한 방향제로도 대책이 안서는 그런 화장실이었습니다.

 

군훈련장엔 아직도 푸세식 화장실이~(2018)

 

이 화장실이 여름에는 그 왜 있잖습니까?

'왕관현상'이라고 우유 CF에 나오는 그 현상. 그게 일어나서 우리 병사들은 그거 피해서

볼일 보면서 앉았다 일어섰다 해야 하는데 얼마나 힘겨운지...그리고 심한 악취에 모기와 파리떼...

요즘에는 그게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할 정도입니다.

 

그리고 겨울이 되면 이 왕관현상은 사라지지만 '탑현상'이라고 아실랑가 모르겠습니다.

그 추운 북풍한설 바로 얼어서 생기는 현상인데 내구성이 돌에 버금가는 탑이 만들어지거든요.

변탑이 생기면 어떻게 처리하는지 아십니까?

신문지에 불 붙여서 녹이거나 망치로 깨기도 합니다.

 

하여간 선임 박이 그날 밤 달도 없는 그믐밤에 볼일이 급해서 화장실로 들어가 조준을 잘못한 

관계로 그 뾰족한 변탑에 찔린겁니다.

긴급호출로 달려오신 군의관님이 물어보시더라구요.

"왜 무슨 일이야? 병명이 뭐야?"

 

"저기 그게 말입니다. 선임 박 하사님께서 화장실에 볼일 보러 갔다가 말입니다.

그만 탑에 찔렸습니다. "아. 뭔소리야?"

군의관님은 그 선임 박에 가셔서 자체조사를 하시더라구요.

그런데 그 부위를 딱 보시더니 매우 난감해 하시며 이러데요

"아 진짜 이거 하필이면 이렇게 이상하냐? 이거 진짜 자세 안나오네. 야야 선임 박. 똑바로 좀 해봐."

 

그런데 그게요. 그 부위를 꿰매줘야 하는데 누워도 자세가 안나오고 앉아도 안나오고 엎드려도 안나오고,

그래도 결국 어찌어찌 마취도 없이 그곳을 꿰맬 수 있었는데 그때 그 선임 박의 찢어질 듯한 비명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쟁쟁합니다.

"아흐! 어무이... 아흐!"

 

그런데 치료가 다 끝나면 차트정리가 무지하게 중요하거든요.

그게 바로 제 몫이었는데 병명을 쓰자니 적당한 말이 있어야지요.

"저기 말입니다. 여기 병명을 뭐라고 쓸까요?" 군위관님에게 물었더니 그러시더라구요.

"아... 진짜, 야 . 그냥 후장파열이라고 써!!"

 

하여간 그래서  그 선임 박의 병명은 '후장파열'이 되었습니다.

그 선임 박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이 드는 것은 조금만 앞에서 찔렸더라면

아마도 지금쯤 '무자식 상팔자야' 하면서 사셨어야 할 텐데 그래도 천만 다행이지요.

 

부대에서 화장실 가기가 제일 무섭다고 하던 때가 수십년전 이지만 아직도 여전한 곳도 있습니다.

2018년 1월 야외 훈련장 화장실도 전면 개편할 것이라고 한 적이 언제인데...

아직도 여전한 게 신기할 정도입니다.

 

수세식 화장실이 보급된지 40여년이 지나고 군 생활관 등에는 비데가 구비된 양변기까지 설치되고 있지만,

유독 야지에 위치한 야외훈련장 화장실은 수십년 전과 크게 다를 바 없는 형편이라고 합니다. 

야외 훈련병들을 위한 최대한 배려를 해주시면 군정부에 대한 감사한 마음도 잊지 않고 후배들도

열심히 훈련에 임할것으로 생각됩니다.

 

 

별반 다를게 없는 야외 훈련장 화장실(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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