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영웅 ㅡ 주윤발의 인간미
사회

시대의 영웅 ㅡ 주윤발의 인간미

by 림프사랑 2022.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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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백발의 영웅 주윤발(67)

 

홍콩의 전설적인 액션,드라마,코미디,멜로등의 대배우 [주윤발]은 나이(67)에도 불구하고

훤칠한 키에 훈훈한 외모, 인간미 넘치는 눈웃음, 특유의 매력남의 아이콘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 자신이 출연한 영화 <무쌍>(2018년 作)감독 장문강 모교인 홍콩침례대학에서 학생들과 좌담회를 가지고,

주윤발은 작년에 이 대학에서 배우로서 빼어난 업적과 사회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인문학 명예박사학위를

받습니다. 

 

[주윤발]은 2018년 수천억원에 달하는 전재산을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주윤발]은 " 돈은 내 것이 아닌, 잠시 내가 보관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내 꿈은 행복해지는 것이고 보통 사람이 되는 것"이라며 "돈은 행복의 원천이 아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즉, 재산이 대략 13억 홍콩 달러(한화 2천여억 원) 정도 된다고 하며, 죽은 뒤 자기 재산 중 99%를 사회사업에 기부하겠다고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다만 재산은 추정치로 보도되어 언론마다 틀리게 보도된면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소가 몸에 배어있는지 매달 용돈으로 1000홍콩달러(한화로 대략 14만 5~6천원)를 아내에게 받아서 쓰고 있으며, 시장이나 할인매장의 의류를 주로 이용하고 비싼 물건 구입비용은 거의 없을 정도라고 합니다. 

 

또 자신은 평소 지하철등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걸로도 유명합니다. 

지하철내에  찍혀 있는 사진을 보면, 부자인 유명한 주윤발배우가 이렇게 허름한 행색으로 다닐수 있나?

네티즌 사이에서도 놀란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시대를 빛낸 영웅이자, 진정한 인간임을 보여주는 주윤발!!

그의 명성은 그의 인간미에서 비롯되었음을 알수 있었습니다!. 

 

허름한 차림에 샌들을 신고 활보하는 주윤발

 

 

주윤발은 1955년생으로 어린 시절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후 생계가 어려워지자 중학교를 중퇴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상점 직원과 우편배달부, 구두닦이, 사무 보조, 호텔 웨이터, 카메라 세일즈맨 및 택시 운전사로 일하며

생계를 책임졌던 시절에 친구의 권유로 1972년 17살의 나이에 연극배우로 처음 데뷔하게 됩니다.

 

이후 연예인 훈련반을 졸업하고, TVB의 민간전기 시리즈에 단역으로 출연하다, 1976년 <광조>라는 드라마에서 첫 주인공을 맡게 됩니다. 최초의 영화 데뷔작은 1976년작 영화 <투태인>입니다. 그러다 1980년작인 드라마 <상해탄>이 인기를 끌면서 스타가 되었고, 이후 1984년에는 <등대여명>으로 대만 금마장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합니다. 

 <소오강호>(1984)드라마도 이때입니다.

 

잘생긴 외모와 카리스마 넘치는 매력적인 액션, 훌륭한 연기력과 우수적인 눈빛...국내 팬들 뿐 아니라

아시아 전역의 사랑을 독차지 했던 배우로  영화 <영웅본색>(1986), <첩혈쌍웅>(1989), <와호장룡>(2000) 등 

꾸준히 영화인으로써 명성과 인기를 이어왔습니다.

 

특유의 썬글라스에 바바리코트, 성냥개비 씹어대는 배우의 이미지도 우리나라에 많은 영향을 미쳤던 배우로 

모든 남성도 그의 패션 바바리코트 붐을 이루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헐리웃 영화에서 패러디하게 되는 <마지막 보이스카웃>,< 매트릭스>등 멋진 쌍권총 액션이 주윤발의 쌍권총

액션에서 비롯된것 이었습니다.

 

영화 첩혈쌍웅 쌍권총액션

 

80년대 말~90년대초 주윤발의 출연 영화는 특히 홍콩 '느와르 장르' 중심으로 매년 10여편에 이르고,

1990년대초중반에는 홍콩이 중국 귀속을 앞두고 허무주의를 반영한 도박물이 대거 나왔는데,

주윤발도 <도신> 등 여러 편에 출연합니다.

안타깝게도 이런 다작 출연은 홍콩 영화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맙니다.

 

의리있는 그의 성품과 무명 시절 도움 받은 감독과 제작자들의 출연 제의를 거절하지 못하고, 

홍콩 영화계를 주름잡는 삼합회 등의 조폭들은 연예 경영의 합리성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배우의 이미지를 고려하지 못한 아류작을 남발합니다.

이는 결국 홍콩 영화계 전체의 몰락으로 귀결되고 맙니다.

 

이후 헐리웃에 진출해 2000년 개봉한 <와호장룡>이 북미권에서 대히트합니다.

그후 <리플레이스먼트 킬러> <드래곤볼 에볼루션> <캐리비안의 해적> 등의 영화에서 조연을 주로 맡으며

헐리웃 영화 속에서 역할 비중이 줄게 됩니다.

평화주의자인 그는 쌍권총액션이 영어문화권에서 그에게 부담이였다고 토로한 바도 있습니다.

 

2014년 홍콩의 '우산 혁명' 시위에서 홍콩의 유명배우 주윤발, 양조위, 유덕화등이 공개적으로 시위를

지지한 적이 있었습니다. 시민들에게 최루탄을 발포하는 중국정부에 항의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이후 배우들의 앞길을 가로막는 중국정부의 방침에 어쩔수 없이 2019년 시위엔 침묵을 지킬수 밖에

없었던 그들의 현실이 있었습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홍콩 연예인들이 시위를 지지하는 마음이 있더라도 중국 본토에서 상당한 수입을 얻고 있는 경우 홍콩 시민과 중국,

그 어느 쪽 편도 들기 힘들다”고 지적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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