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오래전 일입니다. 20여년이 지난 일이지만 그때일 생각하면 웃음이 납니다.
저희 집에는 딸만 다섯입니다. 그 중 저는 셋째 딸입니다.
워낙 엄격하시고 특히 접시와 딸은 밖으로 돌려서는 안된다는 지론을 가지고 계신 아버지 때문에
우리 다섯 딸은 맘편하게 연애하고 결혼한 적이 없습니다.
큰언니는 같은 마을 사는 오빠와 만나는 것을 들키는 바람에 한 달 동안 가택 연금을 당했습니다.
그때 큰 언니는 단식투쟁으로 맞섰고, 결국 열흘이 지난후에 저의 어머니께서
"저러다 딸년 하나 잡겠다!"하고 통곡하셔서 겨우 연금에서 풀려났습니다.
그때 아버지 딱 한 말씀으로 "맘 변하기 전에 한 달 내로 호적 파가라. 알았냐?"
그래서 큰언니는 아버지께 들킨 죄로 한달만에 호적 파서 서둘러 시집 가버렸습니다.
물론 둘째 언니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작은 형부가 언니 쫓아다니다 아버지한테 들켜서 엄청 맞은 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지금도 작은 형부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캉 맷집이 좋아 견뎠지. 안그라마 내 지금 언니랑 결혼도 못했을끼라"
하여간 저는 위로 언니 둘의 우여곡절을 보면서 '내 사전에 연애는 없다. 아버지가 정해주신대로
시집간다' 애초부터 이렇게 맘을 먹고 있었죠.
그런데 세상일이 꼭 맘 같지는 않더라구요. 어느새 제 나이는 스물한 살이 되었고,
어느 날 고향 친구인 정희가 좋은 남자가 있다면서 한번 만나보라고 저를 꼬시더라구요.
처음에는 안된다고 펄쩍 뛰었지만 왠지 모르게 한번쯤은 남자가 어떤 건지 만나보고 싶은
생각이 자꾸 들더라구요.
그래서 아버지 몰래 소개팅이라는 것을 했는데 옴마야. 이게 웬일입니까?
저는 태어나서 이제껏 남자가 그렇게 좋은 줄 정말 몰랐습니다.
그동안 너무 억압을 받고 자라서 그런지 몰라도, 마치 봄날 봇물이 터지듯 제 사랑과
열정이 터지기 시작하는데 정말 왜 이렇게 좋은 겁니까?
집에서는 저를 '소야!'하고 부릅니다. 그런데 그 남자는 '애~나의 애' 하면서 너무나 감미롭게
불러주는 것도 좋았고 그리고 제가 오빠가 없잖아요.
"사랑하는 나의 애야. 앞으로 나를 오빠라고 불러라."
그래서 전 난생처음 "옵빠!"하고 불러봤는데 그 오빠 소리는 왜 그렇게 해도 해도 불러도 불러도
좋기만 한겁니까?
정말 하루하루 만나도 뒤돌아서면 또 보고 싶고, 보고 또 뒤돌아서면 다시 또 보고 싶고,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통화를 해도 사랑의 갈증이 풀리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바로 사단이 난 날인데 그날도 너무 보고 싶어서 회사에서 통화를 했는데도
집에 돌아와 또 통화가 하고 싶은 겁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 잠깐 나간 사이에 제가 전화를 걸었지요.
"오빠, 뭐 하나?"
"내? 니 보고 싶어 미치겠는데 오늘 야근이다."
"그라마 오빠, 이따 밤에 전화해라."
"그라다 들키면 우짜노?"
저는 잠깐 머리를 굴렸습니다.
"울 아버지는 한번 주무시면 절대 안깬다. 밤 12시 지나서 전화하모 내 바로 받을끼다."
"그래?그라마 니 자지 말고 기다리라. 내 야근 끝나면 바로 전화할께"
"알았다, 기다리고 있을게."
그리고 그날 밤, 아버지는 밤 10시를 기점으로 졸음을 참지 못하고 이미 잠자리에 드셨더군요.
그런데 저도 자꾸 졸음이 쏟아지더라구요.
밤 12시가 넘어야 전화가 올 텐데. 그래서 안자려고 졸린눈 비벼가며 텔레비젼도 보고
세수도 해보고 별 짓을 다 해봤지만 세상에 잠이기는 장사는 없다고 하더니 도저히 내려오는
눈꺼풀을 어떻게 감당할 수가 없더라구요.
그래서 그만 오빠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 저는 잠이 들어버렸던 겁니다.
한편 밤 12시, 정확하게 자정을 기해 오빠는 수화기를 들고 우리집에 전화를 걸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벨이 울려도 이미 잠에 빠진 제가 받을 턱이 있나요?
그래도 잠귀가 밝은 우리 엄니가 잠이 덜 깬 목소리로 전화를 받으셨던 겁니다.
"여보세요?"
오빠는 당연히 저라 생각하고 목소리를 낮추며 속삭였지요.
"니 벌써 자나?"
그러자 우리 엄마 퉁명스럽게 이러셨답니다.
"하모, 자제 누꼬?"
그러자 오빠는 제가 장난치는 줄 알고 이렇게 맞장구를 쳤지요.
"니, 그칼래? 그카믄 내 삐지뿐다."
순간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엄마는 잠시 누군가 생각하다, 새벽에 같이 일 나가기로 한 길동 아저씨라고
생각하신 겁니다. 참고로 길동 아저씨는 엄마와 초등학교 동창이고 바로 옆집에 살고 있죠.
"지랄한다. 와 안하던 짓 하노? 와?"
오빠는 움찔 했지만 다시 분위기를 잡으며 이렇게 말했답니다.
"내 인자 마치고 갈라카는데 피곤하기도 하고, 니 옆에 있으마 좀 덜 피곤할 것 같은데..."
그러자 엄마는 그게 같이 일하자는 얘긴 줄 아신 거죠.
"그래? 그라믄 내 지금 나가까?"
이 말을 들은 오빠는 한껏 들떠서 말했습니다.
"그랄래? 내사 나오모 좋제? 그라믄 10분 있다 나온나, 내 집 앞에서 기다릴께. 보고 잡다."
그 소리 들은 엄마가 곱게 나올리가 있나요?
"문디 콧구멍 같으니라고, 와 씰데 없이 쉰소리 하고 지랄이고? 집 앞까지 올거 뭐 있노?
내 바로 논으로 가게. 논에서 보자."
이쯤 되니 우리 오빠도 이상함을 느꼈지요.
"논? 무슨 논?"
"무슨 논은 먼논으로 가야제.
"뭔 소리고? 니 잠 들깼나? 에이 그냥 자라."
"그래 알았다. 철커덕!!"
다음날 저는 이 사실을 모른 채 출근을 했고, 오빠가 전화를 했기에 제가 물어 보았죠.
"오빠, 어젯밤에 전화 했었나? 내 열한시까지 기다리다 잤는데..."
"뭔 소리고? 어제 12시 넘어 내랑 통화 안했나? 자꾸 니가 논으로 나오라케가 내가 그냥
자라 안캤나?"
"이상하다. 내 잠자다 받았나? 그래도 그렇지 진짜로 아무 생각이 안나는데..."
그런데 그날 저녁 우리 집하고 길동이 아저씨 집에서는 대판 쌈이 났지 뭡니까?
"니! 새벽에 전화해가 와 헷소리 삥삥해대쌌노? 니 내 좋아 하나? 아이고~ 내는 임자 있는
몸이데이. 한번만 더 그런 전화 해보래이, 가만 안둘끼다."
물론 길동 아저씨가 만만하게 당했겠습니까?
길동 아저씨 목소리가 바로 담을 넘어왔지요.
"문디가스나! 저건 나이를 먹어도 와 저래 똑같노? 내 언제 너한테 전화를 했노? 내 미칫나?
니한테 한밤중에 전화를 하구로. 일하기 싫으마 싫다카제 뭔 말이 많노. 고마 집어치라. 니 없어도
우리 집 논일 걱정없다."
"와, 저기 완전 오리발이데이. 니 한밤중에 우리 집에 전화 걸어가 이상한 소리했나, 안했나?
그래 고마 집어쳐라. 내도 니 논일 해주기 싫다. 앞으로 말도 걸지말레이. 알았나? 흥!"
그후 한동안 정말 두 분은 말씀도 안나누셨는데 일주일이 못가더라구요.
그런데 참 이상한게요. 우리 아버지가 딸들은 그렇게 단속하시면서도 길동 아저씨랑 엄마랑
늘 붙어 다니면서 아웅다웅 싸우기도 하고 일도 같이 하는 것은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친구사이로
인정을 해주시더라구요.
그래서 소꿉친구가 좋은 건가 봐요.
하여간 우여곡절도 많고 사건도 많았는데 우리 아버지도 점점 힘이 빠지시는지, 언니들 신랑 맞을
때랑은 많이 달라지시더라구요.
우리 오빠, 즉 지금의 신랑이 인사 왔을 때 이러고 말데요.
"어차피 파 갈 거, 퍼뜩 파 가라."
지금 생각해보면 딸 다섯이 하나 둘씩 떠나가는 게 얼마나 안타까우셨을까요?
이제야 아버지 맘을 알 것 같습니다. 아버지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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