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작은 산골마을에서 태어났는데, 그 마을에는 저와 비슷한 나이의 또래 친구 넷이 있었는데
그들 4명이 하루에도 몇 번씩 사건 사고를 일으킨 탓에 한적한 동네에 날이면 날마다
'퍽! 으악!' '퍼버벅! 으악! 하는 소리가 울려퍼졌습니다.
그런데 자질구레한 사건 사고만 치던 우리가 드디어 대형사고를 터트렸으니 그때 겨우 7살이었지요.
아버지께서 피우시던 담배가 어찌나 맛있게 보이던지 그날 '우리도 한번 먹어보자' 하는 작당을 했고
새로 지은 지 얼마 안되는 우리 집 변소에 모여 눈물을 찔찔 흘리며 담배를 뻐끔거리고 있었지요.
그런데 담뱃불 붙인다고 그은 성냥불이 화장실에 가득 찬 암모니아 냄새에 탄력을 받았는지,
바로 화장실 칸막이로 쳐놓은 판자에 달라붙었고 그 불길이 순식간에 변소를 태우더니
그 옆에 가만히 서 있던 사랑채까지 홀라당 태워버리는 게 아니겠습니까?
아! 워낙 순식간에 일어나 우리는 어찌할 바를 몰랐고 그냥 냅다
동네 산중턱에 있는 상여집에 숨었습니다.
그곳에 숨어서 보니 마을은 그야말로 일대 장관이 펼쳐지고 있더라구요.
뻘건 불자동자 뜨고, 삐뽀삐뽀 경찰차 뜨고,하여간 실로 마을이 생긴 이래
처음으로 소방차가 떴다고, 지금도 동네 어르신들은 그날의 일을 잊지 못하고 계시지요.
그나마 옆집으로 번지지 않게 빠르게 대처하지 않았으면
큰일 치를 뻔했다고 말씀하십니다.
어쨌든 상여집에 숨어든 우리는 그날 밤을 못 넘기고 횃불 들고 쫓아온
동네 어른들한테 붙잡혀서 마을로 내려왔지요.
아! 화재 진압을 위해 얼마나 뛰어다녔는지 마을 사람들 몰골이 말이 아니더라구요.
일단 어른들은 우리 넷을 한 방에 모아놓더니 자물쇠로 문을 잠가 버리시더라구요.
"너거들! 꼼짝 말고 여기 있어라 잉?"
어른들은 우리를 가둬놓고 조용히 다른 방에서 뭔가를 매우 심도 있게 의논하시더군요.
우리는 속으로 '아! 어른들이 우리를 어떻게 죽일 것인가를 의논하는구나!'
이것으로 7년간의 생애를 접는다고 생각하니 그 두려운 마음을 가눌 길이 없더라구요.
그렇게 한참동안 쑥덕쑥덕 뭔가를 의논하시던 어른들이 방문을 열더니 밥상을 들여 주시데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삼계탕을 주시면서 어른들이 그러시더군요.
"일단 먹어라. 저녁밥도 안먹었쟈?" 그래서 우리는 또 이렇게 생각했지요.
'아! 개나 돼지도 잡기 전에 잘 먹여놓고 잡는다던데,
우리도 이렇게 먹여놓고 잡으려는 모양이구나!"
우리는 죽을 땐 죽더라도 일단 준 닭고기를 먹자 싶어서 허겁지겁 먹었지요.
그런데 밥상을 물리자 이번에는 금박지에 싼 동그란 청심환을 주시며 어른들이 이러시는 겁니다.
"많이 놀랬쟈?" 자, 이거 먹고 자야지. 안그러면 자다 경기한다. 먹어라."
우리는 그날 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너무나 편안한 잠을 잤고,
그 이후에도 어떠한 추궁은 없었습니다.
아! 그때 우리는 인생의 심오한 진리를 터득했다는거 아닙니까?
'사고를 치려면 왕창 쳐야 한다. 그래야 어른들이 기가 질려 야단을 못 친다.'
그날 이후 우리는 사고를 쳐도 대형사고를 쳤고...
그러다 드디어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된 사건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였지요.
제가 방학이라 몸이 꼬여서 어쩔 줄 모르고 있던 터에 시집간 누나가 해산을 한다는 소식이
날아왔고, 부모님께서는 매우 불안하긴 했지만 어쩔 수 없이 저에게 집을 맡기고 3박 4일
서울 상경을 하셨던 거지요.
저희 어머니께서 올라가시기 전날에 제 손을 꼬옥 잡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아, 제발 사고 치지 말고 얌전히 좀 있어다오. 아들아!"
"어머니 제가 나이가 지금 몇입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요. 하하하."
저는 큰소리를 쳤고, 부모님이 버스에 오르시자마자 이렇게 울부짖었지요.
"아우! 내 세상이다."
저는 곧바로 동네 친구들을 소집했고, 하늘이 주신 이 기회를 더욱 알차고 보람있게 만들기 위해
준비를 시작했지요. 일단 내일 모레 환갑잔치가 있는 집의 한 녀석을 꼬드겨 잔칫상에 올린 돼지
넓적다리를 훔쳐오게 하고, 한 놈은 중동에서 삼촌이 가져온 카세트 녹음기를 들고 왔으며
물론 노래도 최신신곡,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여흥의 시간에 '걸!' 걸들이 빠져셔야 말이 되겠습니까?
걸을 소집하기 위해 우리는 파발을 돌렸고 30분만에 웬만한 걸들 넷을 포섭할 수 있었습니다.
아! 그날은 정말이지 눈도 펑펑 내려주었으며 군불을 얼마나 많이 땠는지 방바닥은 뜨끈뜨끈했고,
훔쳐운 돼지고기는 아궁이 위 솥에서 푹푹 익어갔고 아름다운 무희까지 있으니,
이제 더 부러울게 없었습니다.
우리는 먹고 마시고 열기가 올라왔을 무렵. 카세트테이프를 돌리기 시작했고 둘리스의 '원티드'가
흘러나오자 방안은 거의 광란의 나이트장으로 변해 버렸지요.
아! 다이아몬드 스텝에, 열심히 찔러대던 손가락 춤에, 개다리 춤까지 그렇게 젊음에 취해,
음악에 취해 미친 듯이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문지르고 또 문질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뭔가 발밑에서 푹~하고 꺼지는 느낌이 들더니 '쿵!'하는 소리가 들려오는데
뭔가 느낌이 심상치가 않더군요. 서둘러서 음악을 끄고 사태를 살펴보니 이게 웬일입니까?
들춰보니 방 구들이 내려앉아 손바닥만한게 구멍이 뻥! 뚫려 있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는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고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았지요.
물론 이미 파티는 종을 쳤고 무희들은 서둘러 돌아갔고 대책을 세우기엔 너무 야심한 밤이라
그날은 자고 다음날을 기약했지요.
다음날 아침에 우리는 일단 구멍 난 부분만 시멘트로 메우면 될거라 생각하고 시멘트를 구했지요.
그런데 막상 구들장을 들어내고 시멘트를 바르려는데 구들장의 구조가 바로 옆에 있는 구들장을
들어내지 않으면 때울 수가 없는 구조더라구요.
그래서 어차피 때우는건 마찬가지다. 조금 더 깨는것이 무슨 대수인가 하며 망치로 옆 부분을
조금씩 넓혀 깨나가기 시작했는데 이건 또 웬일입니까?
그 옆을 깨고 나니 그 뒤가 깨지고, 그 뒤를 깨고 나니 그 앞이 또 깨지고. 그렇게 한 장 한 장
거둬내고 보니 처음 손바닥만했던 구멍이 사방 1미터가 넘도록 방 한가운데 뻥 뚫려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닙니까?
아! 정신을 차려보니 정말 이건 장난이 아니더라구요.
그날 우리는 미친놈들처럼 마을을 뛰어다니며 시멘트 구하랴. 모래 구하랴. 흙 구하랴.
정말 정신없이 왔다 갔다~~죽을 고생했습니다.
엄동설한이라 흙이 얼어 있는데 그게 판다고 파집니까?
모래 구한다고 얼음 속에서 모래를 파오긴 했는데 녹아야 말이죠.
그래서 가마솥에다 담아서 불 때고 볶았잖아요.
그런데 넷이서 온 동네를 미친놈 널뛰듯이 돌아다니니
결국은 근처 살던 이모부님께서 감 잡으시고 저희 집으로 오셔서 보시더니
입을 다물지 못하고 가셨지요.
그리고 그날 이모부의 급보를 받으신 부모님께선 서둘러 내려오셨고
저희 아버지께서는 눈앞에 펼쳐진 사태에 넋을 잃으신 채
마당 한구석에 쪼그려 앉아 담배만 뻑뻑 피우시더군요.
아! 그 시간이 얼마나 초조하던지, 차라리 뒤지게 맞는 게 속 편할 것 같더군요.
그런데 한참 후 드디어 아버지께서 말문을 여시더군요.
"그래도 해보려고 애 많이 썼다. 어차피 구들장을 손 볼려고 했는데 같이 해보자."
아! 그날 우리 넷은 정말 뜨거운 사나이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너무 감격해서 무릎 꿇고 울부짖었습니다.
"아부지, 용서해주세요. 잘못했습니다. 흑흑,"
엄동설한에 구들장 다시 까는 작업을 아뭇소리 못하고 하셨던 아버지
그후 사흘간의 작업 끝에 깨끗한 방으로 다시 단장을 했고
아마도 제가 그때 철이 들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제 저도 아버지가 되고 보니, 대형사고 칠때마다 아버지 속이 어떠하셨을지~
확실하게 짐작이 됩니다. 전 아마 죽었다 깨어나도 아버지 인격을 따라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안계시지만 전 언제나 아버지를 정말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생물시간 뱀소동 (17) | 2022.11.28 |
---|---|
우야노~ 번지수가 틀렸데이! (13) | 2022.11.27 |
처녀 선생님의 고명하신 사투리 (14) | 2022.11.25 |
내가 다 책임진다니까 (23) | 2022.11.24 |
사랑합니데이~~ (14) | 2022.11.2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