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서른여덟 된 남자입니다.
저는 선천성 심장병이 있는 관계로 6개월에 한 번씩 병원에 입원해 정기검사를 받고 치료를 합니다.
그날도 저는 간단하긴 하지만 어쨌든 수술을 받기 위해 모병원 4인 병실에 입원을 했는데
간호사가 들어와 절보고 그러데요
"강모씨, 조금 있다가 수술할 거예요 잘 아시죠?
일단 겨드랑이 털 면도하러 선생님이 오실테니까 기다리세요."
몇 번 받아본 경험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수술은 수술인지라 몹시 긴장이 돼 한숨을 쉬고 있는데
그때 병실에 새로운 환자가 들어오더라구요.
엄마와 중학생쯤 보이는 학생 환자였는데 엄마는 학생을 환자복으로 갈아입히더니
서둘러 병실을 나가면서ㅡ
"잠깐 누워 있어. 너 아프다고 시골에서 할아버지, 할머니 올라 오셨는데 병원 입구에 가서 모셔
올 테니까 얌전히 있어. 알았지?"
저는 속으로 '어린놈이 어디가 아파서 병원에 왔을까?'
궁금하긴 했지만 일단 수술 받을 생각을 하니 긴장이 돼서 화장실에 잠깐 들렀지요.
그리고 잠시후 병실로 돌아왔는데,
그때 인턴인 듯한 의사 두명이 학생이 누워있는 침대를 커튼으로 가리고는 무엇인가를 열심히 합니다.
그러더니 잠시 후 '다 됐다' 하면서 휴지뭉치를 휴지통에 넣고 이렇게 말하고 나가더라구요.
"조금 있으면 수술할 거야. 기다리고 있어!"
요기까지 봤을 때. 그동안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알 수가 없었죠.
그리고 생각없이 침대에 누워있는데 잠시 후 그 간호사가 이동시트에 누우라는 겁니다.
"자, 강모씨. 수술실로 가시죠?"
"저기요, 아직 면도 안했는데요?"
간호사가 눈을 똥그랗게 뜨면서 이러데요.
"무슨 말씀이세요? 금방 선생님이 면도 끝내고 나오시는 거 제가 봤는데요?"
"아니에요 제가 안했으니까 안했다고 하지, 뭐 좋은 거라고 두번씩 하려고 하겠습니까?"
그제야 간호사는 뭔가 잘못됐다는 표정으로 옆에 있던 학생을 바라보며 그러데요.
"학생, 혹시 겨드랑이 털 밀었니?"
그러자 학생이 그랬지요.
"예, 선생님이 밀어야 한다고 해서요."
그렇습니다. 의사들이 그 학생을 저로 착각을 하고 겨드랑이 털을 밀었던 거지요.
난감하더군요. 어쨌든 그 간호사와 의사는 뭐라고 쑥덕거리더만 문제의 그 의사 두분이 다시
들어와서 절보고 신경질을 내면서 그럽니다.
"아이참. 아저씨 왜 침대를 비우고 그러세요? 정말."
아니 왜 나한테 신경질을 냅니까?
내가 털 깍으라고 시켰나요?
이런 실수하신게 인턴분이시지 제가 실수한게 아니지 안그렇습니까?
그다음 순간에 시골에서 올라오신 것이 틀림없는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학생 어머니와 들어오시는데
할머니께서는 학생을 보자마자 달려들어 통곡을 하시더군요.
"우야꼬, 우야꼬. 내 새끼. 어디메가 아프노? 에미야. 니는 아를 우쨌길래 병원에 다 입원을 시키노?
니 야가 우리 집안 3대 종손인거 아나, 모리나? 엉?"
나중에 알고보니 그 학생 허파에 기포가 생겨서. 그러니까 허파에 바람이 들어서 입원 했더라구요.
제가 워낙 병원 관계 일이 많아서 그 정도는 잘 아는 데 그렇게 큰 병은 아니거든요.
하여간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손자 걱정으로 정신이 없는 그때 학생이 이러는 겁니다.
"엄마! 근데 아까 저 의사 아저씨들이 나 여기 털 몽땅 깎았다. 그리고 조금 있으면 수술실로 갈 거래!"
"털을 다 깍아? 어데? 그리고 수술은 무슨 수술이고? 그냥 약물치료만 하면 된다캤는데..."
학생 엄마는 놀란듯이 그러고 있는데
바로 그때 의사들이 들어왔고 학생 어머니가 의사선생님을 붙들고 묻데요.
"어떻게 된 겁니꺼?"
그러자 의사 둘은 매우 겸연쩍어하며 그러더군요.
"아 예. 저 학생 수술 안합니다."
그러더니 절 가리키며 이러시더군요.
"이 분이 자리를 비우는 바람에 착각하고 학생의 털을 깎았네요.
너무 걱정 마세요. 금방 다시 날겁니다. 죄송합니다."
그런데 이 말을 남긴 선생님이 제 쪽으로 방향을 돌리려는 찰나 바로 옆에 서 계시던
할머님의 손아귀에 의사 가운을 붙잡힐 수 밖에 없었지요.
"뭐라카노? 그러니까네 지금 저 아제 털을 깍아야 하는데
죄 없는 우리 손자 털을 깎았다. 이기가? 으잉?"
"할머니 죄송합니다. 털은 금방 자랄 거예요." 한 의사가 이렇게 말하고 말더군요.
그러나 할머니께서는 다시 의사 둘을 번갈아 보시며 이러셨지요.
"대체 어떤 문딩이가 깎았노? 말해봐라. 둘 중에 누가 깎았노?"
그제야 의사 둘은 사력을 다해 변명을 하더군요.
"할머니. 진정하세요. 그거 아무것도 아니에요. 털은 금방 자라요. 그럼요."
그러나 할머니께서는 더욱 흥분하시며 그러시더군요.
"안그래도 허파에 바람들어가 실없는 놈 취급받게 됐는디 털까지 몽땅 깍아 가지고
아를 병신 만들면 우야노? 무라내, 무라내라."
의사 두분은 감당을 못하겠는지 간호사에게 뒷일을 맡긴 채 도망을 치셨지요.
그런데 바로 그때 그 할머니가 이번에는 저한테 고개를 휙 돌리시더니
저를 가리키며 이러는게 아닙니까?
"아제요. 이제 보니까네 아제가 문젠기랴. 어잉? 아퍼가 병원에 왔으마 꼬막 누어있을 것이지
와 왔다리 갔다리 해가 우리 손자 털을 깎게 만드노? 어잉?"
제가 억울해서 그랬지요.
"할머니 왜 저보고 그러세요. 제가 안 깎았어요. 그냥 화장실만 갔다왔다구요."
그러자 할머니께서 다시 절 노려보며 그러시더라구요. "어쨌든 아제가 더 나쁜기라!"
잠시후 다행히 수술시간이 되어 입원실을 나갔다 수술 끝나고 돌아오니
학생 엄마와 할머니는 점심 식사하러 나가시고 할아버지 혼자서 학생을 보고 계시데요.
저는 마취가 풀리기 시작하면서 통증으로 이마를 찡그리고 있는데
그때 학생이 할아버지께 어리꽝스런 목소리로 그러더군요.
"할아버지, 내 아까 털 깎은 자리가 따갑고 아프다. 할아버지 우짜노?"
"뭐시여? 따갑다꼬?"
할아버지는 한참 주머니 속을 뒤지더니 무엇인가를 꺼내는데 그건 물파스가 틀림없었습니다.
"이거 모기 물려 따가운 데도 매매 바르면 시원하데이. 자 대봐라."
저는 그 아픈 와중에도 다 죽어 가는 목소리로 외쳤지요.
"할배요, 그거 바르면 안됩니더. 더 화끈 거립니더."
그러자 할아버지 제쪽을 힐끔 보시더니 버럭 소리를 치시더군요.
"시끄럽다! 마. 이게 다 자네 탓이여. 하여간 경찰 부르기 전에 조용히 못혀! 아이구, 내 새끼 우짤꼬?"
할아버지는 물파스를 학생의 겨드랑이에 듬뿍 발라주더군요.
그리고 잠시후 그 학생 말도 마십시요.
눈이 벌게 가지고 펄쩍펄쩍 뛰고 나중에는 간호사가 들어와
물로 닦고 부채질하고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잠시후 할머니와 학생 엄마가 돌아왔는데 학생이 눈물 콧물 찍어가며 자초지종을 밝히더군요.
다 듣고 난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휙 노려보시는데 전 속으로 '이제 할아버지는 죽었다' 했지요.
그런데 이건 또 웬일입니까?
할아버지를 노려보던 눈길을 거두시더니 고대로 제쪽으로 돌리면서 이러시는게 아닙니까?
"영감보다 아제가 더 나뻐!"
저는 정말 눈이 똥그래져 가지고 아픈 몸을 일으키며 그랬지요.
"할머니, 제가 안그랬어요. 저는 방금 수술해서 일어나지도 못한다구요."
"그걸 누가 몰러? 그래도 늙은이가 이상한 짓 하면 젊은것이 우째든지 말려야지.
그걸 그냥 쳐다만 봐? 아까 경찰 불렀어야 하는건디 참말로,"
아! 정말 이렇게 억울할 수가 있는 겁니까?
그런데 바로 그때 병실 문을 열고 우리 집사람이 들어오데요.
갑자기 마누라 얼굴을 보니까 설움이 복받쳐서 제가 울먹이며 그랬어요.
"여보! 흑흑."
"왜? 검사가 뭐 잘못됐나?"
"그게 아니고 간호원보고 병실 좀 옮겨달라고 해줘. 저 할머니가 나만 뭐라고 해! "
그래서 병실은 옮겼냐구요? 아니요. 병상이 1인실 밖에 안 남았다네요.
인턴 의사들도 병실에서 한번 더 환자를 확인하시고 행동하셨으면,
이와 같은 불상사가 나오지 않았을 텐데 저도 억울했습니다.
"어쨌든 저때문에 학생털이 깍인것은 죄송합니다."
"할머니! 내내 건강하시고, 손자도 건강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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