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형님과 형수님 사이에 조카가 한명 있는데 이름이 '지성' 입니다.
전 솔직히 얘를 별로 안좋아합니다. 그래서 장가를 못 갔는지 몰라도,
'지성'이가 솔직히 잘생기진 못했어도 조카라 그런지 남의 애보다는 예쁘더라구요.
어느날 이 조카와 얽힌 비극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형수님께서 김장김치 담는 것을 도와주러 큰댁에 가야 된데네요.
지성이를 봐줄 사람이 없다면서 저보고 조카를 봐달라고 부탁하더라구요.
제가 평소 제일 싫어하는 게 뭔지 아세요?
바로 애 우는거, 애 보고 뽀뽀해줄래? 하며 아양 떨어줘야 하는거, 진짜로 싫어합니다.
그런데 저보고 애를 보라니요. 당연히 저는 반대하며 그랬지요.
"형수님, 저 못해요. 다른 일 시키면 하는데요, 절대로 애는 못보니까 알아서 하세요"
우리 형수님 냅다 후다닥 뛰어 나가며 그러는 거예요.
"그럼 갔다 올께요. 우유는 타 놓았으니까 울면 주세요. 아셨죠? 호호호"
형수님 나간 거 알고 미친듯이 쫓아 나갔지만, 평소에는 느린분이 왜 그렇게 빠른지,
벌써 사라지고 없더라구요.
애가요 처음에는 지 엄마 외출 한지도 모르고 혼자서 잘 놀더니
10분 정도 지나니 엄마 없다는게 알아채고 그때부터 울기 시작하는데 ~
아, 제가요 처음에는 등 돌리고 모른 척 했어요.
그런데 애가 울다 결국은 나밖에 없는 걸 알았는지 저만 졸졸 따라다니면서
제 귀에다 대고 울어대는 거예요.
조카 놈이 거의 고막 터지게 울어대는데 방법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우유 먹여 봤지요. 거부하데요. "그럼 어쩌라고? 짜슥아!"
조카한테 윽박지르고 노려도 봤지요. 더 울대요. 그 다음 어떻게 했냐구요?
결국 형수님 포대기 가져다가 업었습니다.
저는요 지금도 끔찍합니다. 흘러내린 머리칼 하나에도 손을 바르르 떠는 이 총각이
포대기에 조카업고 자장가 부르고 이게 말이 되냐구요?
그런데 잠시 후 전화벨이 울리데요. 형수님이 "어머, 도련님, 지성이는 잘 놀죠?"
놀긴 뭘 잘 논다고~눈물이 그냥 핑 돌 것 같데요...
그래도 꾹 참고 그랬지요.
"빨리 오세요. 지성이 여태까지 울었단 말이에요. 아우 진짜."
그런데 형수님이 또 그러시더라구요.
"저기 도련님. 어머님이 지성이 보고 싶다고 데리고 좀 오라고 하시는데 지금 좀 오실래요?
기저귀 가방 꼭 챙기시구요..."
아! 이건 또 뭐냐구요?
아니 차도 없는 마당에 서울에서 안산까지 어떻게...애를 데리고? 오라니요...!
절대로 못한다고 했지요. 목에 칼이 들어와도 못한다구요.
그런데 그때 전화 확 바꾸는 소리가 들리더니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우리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오더라구요.
"미친놈, 목에 칼이 들어와도 못 오긴 왜 못 와? 지금 바로 전철 타고 와라.
애 감기 걸리지 않게 잘 입히고 기저귀 가방 까먹지 말고 제대로 안오면 알제? 철커덕."
정말로 미치고 폴짝 뛰겠더라구요, 안가면 안되냐구요? 안되지요.
어머니한테 한번 잘못 보이면 거의 석 달 열흘 달달 볶이고 지금 당장 가서
신부감 찾아오라고 또 난리가 날 텐데 어떻게 하냐구요.
그래서 저는 지성이 옷 입혀서 기저귀 가방 하나 들고~
그래도 자존심은 있어서 포대기는 생략했지요.
그건 죽어도 진짜로 못하겠더라구요...
하여간 조카를 안고 전철 타러 갔지요.
그런데 전철 타자마자 마침 자리가 있기에 '그래도 운은 있구나' 생각하면서 앉았는데
창피해서 아무랑 얘기도 하고 싶지 않은데 옆에 앉은 아줌마가 그러시는 거예요.
"아이고 , 아기 아빠세요? 애가 어쩜 이렇게 장군감이에요? 아빠 닮았네."
아니, 진짜로 장군은 뭔 장군에~애가 왜 저를 닮냐구요!.
저는 그냥 확 '얘~ 여자예요. 그리고 저~ 아빠 아니에요' 하고 싶었지만 얘기 더 해봐야
아주머니가 자꾸 이 말 저 말 할거 같아서 그냥 입다물고 있었지요.
그런데 그 아주머니가 계속 그러시는 거예요.
"아이고, 아기 아빠. 아기 옷을 너무 춥게 입혔구만.
애 감기라도 걸리면 어떡하려고? 쯧쯧쯧."
"돈 없어서 그래요.
먹고살기도 힘든데 애 옷 사줄 돈이 어디 있겠어요?"
저는 좀 심하다 싶었지만 이렇게 말해야 다시는 말 안붙이실 것 같아서 퉁명스럽게 말했지요.
그런데 아주머니가 또 그러시데요.
"저기, 내가 애 좀 안아줄까요? 영 애가 불편해 보이네..."
그래서 저 이게 웬 떡이냐 싶어서 지성이를 그 아주머니께 확 맡겨 버렸지요.
솔직히 몇 시간이지만 이놈 땜에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노곤하기까지 했는지 깜박 졸았던 모양인데,
눈을 확 떠보니까 이게 웬일입니까? 제가 내려야 할 역이더라구요.
순간적으로 스프링 튕겨 나가듯 일어나 너무나 신속한 동작으로 지하철 문을 빠져나왔지요.
이 탁월한 순발력에 '역시 녹슬지 않았군!" 하며 의기양양하게 개찰구도 빠져나왔지요.
밖으로 나오니 근처에 어묵과 떡볶이 파는 포장마차가 있어서 출출한 김에 어묵도 하나 사먹었지요.
그런데 먹으면서 왜? 그렇게 뭔가가 이상하더라구요? 심심한 것도 같고! 뭔가 허전한 것도 같고!
그런데 어묵이 딱 목으로 넘어가는 순간 번뜩 생각나더라구요.
아차! 우리 지성이! 전철에 두고 온 마이 커즌!
저 거의 제정신 못 차리고 지하철로 다시 뛰어갔습니다.
"저기요, 애를 잃어버렸어요. 애가요, 이제 막 돌 지났어요.
제가요, 그만 깜빡 잊고..."
제 얘기를 들은 분실문 직원 아저씨는 매우 기가 막혀 하면서 그러더라구요.
"아니, 보다보다 지하철에서 애 잃어버리고 내린 아빠는 처음 보는데요.
왜 그러셨어요?"
아니 그걸 왜 그랬는지 아는 놈 같으면 그런 짓을 저지르기나 했겠냐구요?
아, 그때부터 불쌍한 우리 지성이를 생각하니 미치겠더군요.
으, 이럴 줄 알았으면 침 좀 묻어도 뽀뽀도 해달라고 하고, 안아주기라도 할 걸.
아! 진짜로 그건 그렇고 어머니랑 형수님한테는 또 뭐라고 해야 하나?
머리속이 뒤죽박죽 정신이 없더라고요.
전철에다 놓고 내렸다고 하면 아마도 오늘 안으로 뼈 추스르기 힘들 텐데...아이구 어쩌나!
유괴를 당했다고 할까? 어떤 아주머니가 너무나 센 힘으로 애를 안고 도망갔다고 할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더라구요.
그런데 그 어느 것도 말이 되냐구요?
나중에는 눈물이 날 것 같더라구요. 아~ 제발 삼촌에게 돌아와 다오...제발!!
그때 분실문 직원 아저씨가 그러시데요.
"여기서 내리는 것을 그 아주머니도 봤을 테니
다시 이곳으로 아이를 데리고 올 수도 있으니 기다려 봅시다"
저 그때 기도했습니다.
'오 신이시여, 우리 지성이를 저에게 다시 돌려주기만 하신다면
절대로 불도그 닮았다고 놀리지 않겠습니다.'
'평소 응가 할 때마다 냄새난다고 싫어했었는데...
이제는 응가도 치워주고 기저귀도 제가 갈아주겠습니다.
하느님! 부처님! 제발 우리 지성이를 돌려주세요.'
그렇게 2시간 정도 기다렸을까요. 그런데 정말로 기적이 일어나더라구요.
글쎄 그 아주머니가 우리 지성이를 데리고 제가 내린 지하철역으로 다시 오신 거예요.
아! 저는 거의 눈물 콧물 범벅되어 이렇게 흐느꼈지요.
"지성아! 흑흑... 지성아! 돌아와 줘서 고맙다~"
그 아주머니가 그러시데요.
"애 아빠가 오죽하면 애를 다, 그렇게 버리고 갔겠어?
그래도 애를 봐서라도 열심히 살아야지."
"애가 예쁘잖아? 내가 파출소 데려갈까 하다가,
그래도 애기 아빠가 그렇게 양심을 버릴 사람 같지 않아서 와 본거야"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어쨌든 어찌나 고맙던지! 그리고 우리 지성이가 그날은 진짜로 얼마나 예쁘던지~
아주머니께 무지하게 감사하다 인사드리고 그리고 무려 5시간만에 집에 도착하니
어머니께서 뭐 하다 이제 왔냐고~ 난리 시더라구요.
그래도 지성이를 다시 되찾았다는 기쁨에 저 묵묵히 잔소리 다 들었습니다.
그때 그렇게 잃어버렸다 찾은 우리 지성이가 이제 4살입니다.
이 녀석이 그때 비화를 함께 해서 그런지 지금은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모릅니다.
"지성아, 이 삼촌 용서할 수 있지?
이제 삼촌은 사람들이 너보고 못생겼다고 해도 절대로 그렇게 생각 안한다.
우리 지성이 최고! 삼촌 또 놀러갈게. 그때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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