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나이 열여덟 당시 학교에서 언더그라운드에서 명성을 날리던 일명 '멍게파'(얼굴 여드름 있는 놈들 모임)의
원년 멤버로 교복바지 잘라 칠부바지 만들어 입고, 옆구리 가방 끼고 한쪽 다리 달달 떨면서 지나가는
여학생을 보면 '아 쥑인다, 쥑여!' 하며 딴지걸고 지금 생각하면 불량기 가득한 학생이었지요.
그런데 이런 제가 드디어 멍게파 인생을 과감히 청산하고 새롭게 참신한 학생으로 거듭나는 일이 생겼으니,
사실 뭐 요즘에야 세월이 좋아져서 남녀공학이 많지만 그 당시 게다가 공업계 고교였던 우리 학교에서
여자를 구경하기란 실로 하늘의 별 따기 정도였지요.
그러니 늘 우리의 생활은 학교 담 밑으로 지나가는 여자만 봐도 제 3의 성처럼 보이는 학창시절이었습니다.
그러던 즈음 아니 이게 웬일입니까? 2학년 올라가면서 몇몇 선생님께서 전근 오고 가시는 과정에 글쎄
여자 선생님이 그냥 여자도 아니고 처녀 선생님이 오신 게 아닙니까?
아흐!! 아흐!! 아흐!!~우리는 그 소식을 듣고 3일 밤 3일 낮을 울부짖었지요.
너무 좋아서요. 그런데 드디어 전근 오신 처녀 선생님의 과목인 국민윤리 첫 수업을 시작하던 날,
저는 어디서 한 떨기 수선화가 교실문을 열고 들어오는 줄 알았습니다.
선생님께선 그때 너무나 예쁜 입을 움직이며 첫인사를 하셨습니다.
"아따. 야들아. 나가 이번에 새로 온 윤리선생님인디 잘 부탁한다잉?"
아! 너무 썰렁해서 아무 말도 못했지만 다음 순간 우리는 구르고, 웃고 난리였습니다.
토종사투리 그것도 자꾸 듣다보니 엄청 정감 있고 예쁘고 사랑스럽더군요.
어쨌든 우리는 하루라도 윤리선생님을 보지 않으면 학교를 떠날 수 없는 중증 상사병을
앓게 되었고 그 즈음 학기 초 반장선거가 돌아왔는데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 선생님과 더욱 가까이 할 수 있는 기회는 바로 반장이 되는 것이다. 그래 반장이 되자.'
그후 저는 멍게파 조직을 동원한 조직적인 선거작전에 들어갔지요.
사실 성적으로 보나, 평소 품행으로 보나 제가 '반장'이 될 턱이 있겠습니까?
저말고 누군가 나섰다하면 바로 탈락인데 그래서 저는 반장 후보에 오를만한 놈들을 뽑아
협박도 해보고, 살살 달래보기도 하고, 최종적으로는 당선되면 라면 한 그릇씩 사겠다는 실로
선거사상 유례없는 흑색, 불건전, 뇌물, 타락선거를 거쳐 단독후보로 당선이 되었던 거지요.
제가 반장이 되었다고 담임선생님께 보고를 하러 갔을 때, 담임 선생님의 말씀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뭐? 니가 반장이라구? 이거 이제 헷소리까지 하네. 됐어 임마. 가봐!"
어쨌든 그래도 전 됐다 이겁니다. 그리고 전 반장이 되었다는 명분으로 윤리선생님을
만나러 수시로 들락날락 교무실 출입이 매우 잦았지요.
그러던 어느 날 또다시 찾아온 윤리시간!
선생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아따. 야들아, 오늘은 노인문제에 대해 공부를 할건디 긍게 뭐시냐 사회가 발전할수록
이 노인문제가 솔찬히 문제가 되는구먼. 근디 여그서 제일 중요한 건 뭘까?
그건 바로 우리들 맴인디 이 노인들이 누구냐? 바로 우리들의 부모님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면 그렇게 함부로 할 수가 없는 것 이제? 기냐? 안기냐? 잉?"
그때 우리들은 선생님의 열변과 명강의에 매료되어 넋을 놓고 있었지요.
하지만 그때 우리가 아무 반응이 없자 선생님은 다시 한번 물으셨습니다.
"기여? 안기여? 왜 가만히들 있는 것이여? 시방! "
선생님의 안색이 영 좋지 않은 게 아무래도 뭔가 '반장'으로서 제 역할을 해야 될 것 같은
아주 강한 필이 오더군요. 선생님께선 다시 더욱 얼굴을 붉히며 말씀하셨습니다.
"야들이 반항하는 것이여 뭐여? 기여? 안기여?"
바로 그때 전 홀연히 일어나 교실 전체를 향해 이렇게 외쳤습니다.
"얘들아. 뭐하냐? 빨리 기여!"
그리고는 제가 솔선수범하여 교실 바닥을 기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저를 따라 모든 학생들이 일제히 바닥을 기었으니 상상이 되십니까?
오십명이나 되는 남자들이 벅벅 기는 모습을요!
저는 기면서 매우 흡족한 얼굴로 선생님을 바라보니 선생님께선 화가 잔뜩난 얼굴로
"흑! 너거들 나한테 반항하는 거제? 흑!" 이러시더니 교실문을 나가시더군요.
결국 저희는 다음 시간 학생주임 선생님께 불려가 단체로 운동장 열 바퀴 돌고
'처녀 선생님 능멸죄'로 일주일 내내 화장실 청소했습니다.
정말 억울하지만 누굴 탓하겠습니까? 선생님의 고명하신 사투리를 이해하지 못한
우리가 죄인이지요.
어쨌든 이렇게 제1차 사건이 바람처럼 지나가고 드디어 봄! 소풍의 계절을 맞게 되어
소풍을 갔다는 거 아닙니까. 그때 우리는 남들 김밥 먹을 때 근처 야산에서 자리 잡고
냄비에 라면을 끓여 먹었습니다.
그런데 다 먹고 국물만 남았을 즈음 마침 그곳을 윤리선생님께서 저희를 반기며~
"아따, 너덜 김밥 안먹고 라면 끓여 먹었냐? 아따, 멀국에 밥 말아먹으면 참말로 맛있는디...쩝쩝"
윤리선생님께서 입맛을 다시고 가는게 아닙니까? 순간 저는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났지요.
"아, 멀국! 거기에 멀국에 밥 말아먹고 싶단 말씀이지? 그래 지난번 일도 있고 이번에는 확실하게
멀국을 끓여 반드시 밥 말아 드시게 하는 거야."
저는 소풍의 하이라이트인 장기자랑도 포기한 채 산을 내려와 멀국 재료를 찾기 시작했지요.
멍게파 부회장에게 물었더니 부회장이 그러데요.
"멀국? 내 생각에는 그건 '멀리서 온 귀한 국'이 아닌가 싶거든? 멀국? 멀리서 온 국? 맞지? 그치?"
역시 놈이 나보다 한 수 위더군요. 전 예리한 부회장의 말을 따라 되도록 멀리멀리 돌아
멀국의 재료를 찾아 온 산을 헤매었던 겁니다.
그렇게 얼마나 온 산을 뛰어다녔을까. 산밑에 마침 잘 다듬어진 고추밭과 열무밭이 보이더군요.
저는 거의 허겁지겁 오로지 멀국을 끓이겠다는 일념으로 고추와 열무를 뽑기 시작했던 겁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어디선가 홀연히 웬 할아버지의 음성이 들리더군요.
"저놈 잡아라! 도둑놈 잡아라!"
아! 그렇습니다. 저는 오로지 멀국을 끓여야겠다는 일념으로 그것이 남의 농작물을 무단 절취한
나쁜 짓이라는 것을 잠시 잊었던 거죠.
결국 그날 할아버지 손에 이끌려 경찰서까지 들어가고 연락 받고 오신 학생주임, 교감선생님께서
직접 할아버지께 고개 숙여 사죄하고 고추 값, 열무 값 물어주고 끝났죠.
그후 저는 '멍게파'의 원년 멤버에서 완전히 제거 당하고 '멀국반장'이라는 별명을 새롭게 얻었는데
요즘도 가끔 학교 찾아가면 선생님들께서 이러십니다.
"야, 멀국 반장. 요즘은 사업 잘 되냐?"
졸업 후 윤리선생님이 결혼했다는 소식까지 들었는데, 잘 지내고 계시는지 궁금하네요.
지금 생각하면 정말 한때 어이없는 행동이 우습기만 합니다.
뜬금없이 교실바닥 기기~ 멀국때문에 멀리 남의 밭에서 채소서리를 하고~
선생님의 사투리! 지금은 잊지 못할 추억의 사투리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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