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의 집사였던 콘스탄트는 황후였던 조세핀과 자주 당구를 쳤다고 합니다.
그가 쓴 <나폴레옹의 사생활 회고록>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나의 당구 솜씨는 상당한 것이었으나 황후에게는 항상 양보하였다. 그것이 황후한테는
매우 기뻤던 모양이다."
이 고백은 귀중한 교훈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손님이나 애인 혹은 남편이나 아내와 말다툼을 하는 일이 있을 경우, 승리를 주장하는
것보다 양보하는 것이 좋습니다.
시비가 생기면 사람들은 거의 서로 자기가 옳음을 확신시키고 끝내는 것이 통례입니다.
이론적인 투쟁의 화려한 승리를 얻는 것이 좋을까요?
아니면 상대의 호의를 획득하는 편이 좋을까요!
"인간은 억지로 설득은 당해도 수긍은 하지 않습니다."
이런 식의 싸움에서 이긴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만약 지게 되면 진 것이고,
이겼다고 해도,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요?
때려 눕힌 쪽은 의기양양하겠지만, 공격을 당한 쪽은 자존심이 상하여 분개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시시비비를 따져서는 바꿀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벤자민 플랭클린>은 이렇게 말합니다.
"시비를 하거나 반박을 하면서 상대를 이길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헛된 승리이다.
이런 식으로 상대의 호의는 절대로 얻어낼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론적인 화려한 승리와, 상대의 호의를 획득하는 것!
이 두가지는 좀처럼 양립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올바른 시비를 한들 상대의 마음은 편치 않습니다.
그것은 올바르지 않는 시비를 한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링컨>은 동료와 싸움질만 하고 있는 청년 장교를 이렇게 나무란 적이 있습니다.
"자기의 향상을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은 시비 같은 것을 하고 있을 여지가 없다.
시비의 결과는 마음이 불쾌해지거나 자제심을 잃어버리든가 할 뿐 아닌가?
이쪽에서 5퍼센트의 타당성이 있을 경우에는 아무리 중대한 일이라도 상대에게 양보해야 한다.
이쪽이 100퍼센트 옳다고 생각될 경우에도 사소한 일 같으면 양보하는 것이 좋다.
만약 골목에서 개를 만나면 권리를 주장해서 물리치기보다는 개에게 길을 양보하는 것이
현명한 것처럼, 비록 개를 죽였다손 치더라도 자신의 상처는 쉽게 낫지 않는다."
<석가모니>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미움은 미움으로써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사랑을 가져야 비로소 사라진다."
사소한 논쟁에 자제심을 잃지 않도록 조심하고, 시비곡직을 가리는데 목숨걸지 않는게
자신을 향상시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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