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카혼타스(1595~1617) ▒
<포카혼타스>는영국인과 결혼한 아메리카 원주민으로, 런던에서 유명인사가 된 여성입니다.
아메리카 원주민과 영국 정착민들 사이의 평화 관계를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원래 이름은 <마토아카>로, 포카혼타스라는 이름은 자유분방한 성격 때문에 지어준 별명입니다.
1600년대 <존 스미스>라는 매우 용감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오래전에 인디안들이 들끓고, 숲이 우거지고, 거친 들짐승이 많은 미개척지에 보내지게 됩니다.
그의 모험에 관해선 많은 이야기들이 전해지는데 이들 이야기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있습니다.
어느 날 스미스가 숲 속에 있었는데 갑자기 인디안들이 나타나 그들을 포로로 잡혀가게 됩니다.
그들은 그를 자기들의 추장에게도 데려가 곧 그를 죽일 준비를 합니다.
커다란 돌 하나가 들려져 왔으며, 스미스는 그 돌위에 머리를 올려 놓은 채 눕혀져 있습니다.
그러자 키 큰 인디안 두사람이 손에 큼직한 곤봉을 들고 앞으로 나왔습니다.
추장과 그의 참모들이 보기 위해 둘러섰습니다.
두 인디안은 곤봉을 치켜들었습니다. 다음 순간이면 스미스의 머리 위로 곤봉이 떨어질 찰라,
바로 그때 12살의 작은 인디안 소녀가 달려들었습니다.
소녀는 추장의 딸이었는데 이름은 <포카혼타스>였습니다.
소녀는 스미스와 곤봉을 치켜든 사이로 뛰어들었습니다.
소녀는 스미스의 머리를 두 팔로 끌어안았습니다.
소녀는 자신의 머리를 스미스의 머리 위에 얹었습니다.
"오 아버지 ! , 이사람을 살려 주세요. 이사람이 아버지께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았잖아요.
우린 이 사람의 친구가 되어야 해요."
곤봉을 든 두 사람은 소녀가 다칠까봐 내려칠 수가 없었습니다.
추장은 처음에는 어찌 해야 할지를 몰라하다 그는 자기의 몇몇 용사들에게 말합니다.
그들은 스미스를 일으켜 세워서 그의 팔목과 발을 묶은 줄을 풀어 주고, 그를 자유롭게 해 줍니다.
다음날 추장은 스미스를 집으로 보내 줍니다.
그 사건이 있은 후부터, 포카혼타스는 살아 있는 동안 백인들의 친구가 되어 그들을 돕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고 합니다.
1613년 17살의 포카혼타스는 영국-인디언 분쟁을 겪는 동안 영국으로 넘어왔던 포카혼타스는
영국인들에 포로로 잡혔고, 노예로 끌려가게 되었을 당시 몸값을 치러서 자유가 됩니다.
잡혀있는 동안 세례를 받고 기독교로 개종한 후에는 레베카라는 이름으로 개명합니다.
부족에게 돌아갈 기회가 있었지만, 그녀는 영국에 남아 영국인이 되었습니다.
1614년 18살의 그녀는 담배 농장주였던 <존 롤프>와 결혼하여 이듬해 19살이 되는 1615년 1월에 아들
<토머스 롤프>를 출산합니다.
남편은 담배 농사에 인디언들에게 많은 조언을 받아가며 큰 농장으로 성공하기도 합니다.
20살이 된 1616년에는 가족과 함께 런던으로 여행을 떠났다가 거기에서 포카혼타스는 제임스타운 정착촌에
대한 투자를 늘리기 위한 전략으로 문명화된 미개인의 사례로서 잉글랜드 사교계에 소개되었습니다.
이 부부는 잉글랜드와 선주민 간에 중요한 연결고리가 되었던 것입니다.
유럽이나 영국에서 아메리카 원주민은 미개한 종족, 이교도, 식인종, 원시인 등의 이미지가 있었지만.
포카혼타스는 원주민 외모이면서도 영어를 구사하고 영국식 복장과 영국의 예법에 기독교인으로
개종한 모습이었으니 당시 영국 사회에서는 큰 이슈였습니다.
여성들 사이에서는 포카혼타스의 모습이 큰 유행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때 포카혼타스의 실물을 그림으로 남겨지게 됩니다.
그러나 21세의 나이에 알수 없는 병에 걸려서 시름시름 앓다가 사망하게 됩니다.
영국에 노예로 끌려온 원주민들도 많은 수가 사망한 질병이, 유럽의 풍토병에 면역력이 약해서 사망에
이르렀다는 보고처럼 포카혼타스도 같은 질병일 것이라 추측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현재 미국에서 포카혼타스의 후손이라고 알려진 사람은 약 3만 명입니다.
<로버트 E.리>,<낸시 레이건>,<퍼시벌 로웰>,<에디스 윌슨>등 유명인사도 상당수입니다.
포카혼타스의 후손이 정착한 버지니아 주는 미국 초기 역사에 중요한 지역 중 하나이며 그러다 보니
정치, 경제, 군인 등 유명인이나 가문이 상당히 많다고 합니다. 포카혼타스의 후손들 역시 그런 가문들과
연결된다고 합니다.
또한 초기 정착민들에게 미 원주민의 뿌리 그것도 대추장의 딸인 공주의 혈통은 자부심으로 여겼습니다.
미국에서도 버지니아는 각종 인종차별로 유명했는데, 버지니아의 인종차별주의자들은 다른 미국의
인종차별주의자처럼 조상 중에 단 한명의 유색인종이 있으면 백인으로 보지 않았지만, 포카혼타스의
후손만은 예외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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