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흔(聖痕)은 스티그마타(stigmata)라고도 부르며,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형을 당할 때에 육체적인 고통과 상처가
일반인에게 갑작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으로, 과학적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힘에 의해서 몸에 저절로
나타난다고 전해지는 예수가 받았던 상처와 유사한 상처를 말합니다.
성흔이 생길 때에는 예수나 성모 마리아 ,천사등의 모습을 보거나 그들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고 합니다.
일단 상처가 생기면 출혈과 함께 강한 통증을 수반한다고 하는데, 그 상처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십자가의 흔적은 못에 의해 손과 발에 난 상처, 온몸에 채찍으로 맞았을 때 느끼는 상처,머리에 씌워진 가시관으로
인한 이마의 상처, 창에 찔린 옆구리상처,그리고 피눈물이나 피땀등도 포함합니다.
로마 가톨릭에서는 성흔을 하나의 기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내린 축복이며 그들은 메세지를 보내기 위해 선택된 사람이라고 인정하였습니다.
성흔 현상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3세기 <아시시 성 프란시스코>로 보고되어 있습니다.
1224년 <아시시>가 40일 동안 베르나 산에서 단식 기도를 하고 있던 와중에 9월 14일에 환시를 체험하였다고
합니다. 그 결과, 자신의 양손과 양발 그리고 옆구리에 성흔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프란치스코와 함께 있었던 <레오> 수사는 당시 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간략하지만 확실한 기록을 남겼는데,
이는 가톨릭교회에서의 성흔 현상에 대한 최초의 기록입니다.
“갑자기 그는 하늘로부터 찬란하고 불타는 여섯 개의 날개를 가진 세라핌(치천사)이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그 천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와 같은 오상(다섯가지 상처)을 가졌는데, 그의 날개 중 두 개는 머리 위로
뻗쳤고, 둘은 날 수 있도록 펼쳐져 있고, 다른 둘은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
세라핌(치천사)은 그에게 그리스도의 오상을 남겨주었다.” 하지만 성흔을 받고 난 후 프란치스코의 건강은 급속히
안 좋아져 눈이 반쯤 멀었고 심한 병까지 얻게 되었다. <프란치스코>는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며 치료를 받았지만
별다른 효과는 없었다고 합니다. 결국 그는 작은 오두막으로 돌아왔습니다.
자신의 죽음이 머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프란치스코는 인생의 마지막 시간을 성경과 영신 서적 등을 읽는 것으로
보내며 죽음을 준비합니다. 1226년 10월 3일 해질 무렵에 프란치스코는 시편 142(141)편 ‘큰 소리로 나 주님께 부르짖네’를 노래로 부른 후에 44세의 나이에 선종하였다."큰 고통을 겪고 낙인이 찍힌 지 2년 만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에게는 열린 상처가 없었고 흉터만 있었습니다.
시에나(Sienna)의 <카테리나> 그녀는 6세 때부터 십자가에 못박히는 환시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1375년 28세에 카테리나는 피사에서 오상(5가지 상처)을 받고, 크게 고통스러웠다고 합니다.
그러나 당시 본 환시 속의 예수가 "지식과 은총의 웅변을 줄 것이니 여러 나라를 다니며 권세가와 지도자
들에게 나의 소망을 전하라" 했던 명령을 따라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고위 지도층과 성직자들을 대상으로
"사치와 향락에서 벗어나 평화를 찾아야 한다"고 역설하였다고 합니다.
카테리나는 로마에서 33세를 일기로 사망합니다. 예수가 죽음을 맞이한 나이와 같습니다.
죽음이후에 성흔은 사라졌다고 합니다.그녀의 시신은 산타 마리아 소프라 미네르바 성당 묘지에
매장되었다가 성당 내부로 이장되었는데 유해에서 분리된 머리는 부패하지 않은 채 시에나에 있는
산 도미니코 성당에 안치됩니다.
이탈리아의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신부에게 나타난 성흔 현상ㅡ
1911년 비오 신부는 자신의 영적 조언자인 <베네데토> 신부에게 보낸 서신에서 자신에게 나타난 성흔
현상을 설명하는 글을 썼습니다.
지난밤에 제게는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이해조차 못할 일이 생겼습니다. 제 손바닥 중앙에
1페니 동전 정도의 크기의 붉은 상처가 나타났는데, 커다란 통증이 뒤 따랐습니다. 그 고통은
너무나도 극심하여 지금도 고통스럽습니다. 그리고 제 발에도 약간의 통증이 느껴집니다.
이후 성흔은 잠시 사라졌다가 1918년 9월에 다시 생겨났다고 합니다. 비오 신부가 고해성사를 집전하던
중에 성흔이 나타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50년 동안 낙인을 찍고 하루 평균 한 컵 정도의 실혈을 했습니다.
감염은 일어나지 않았고 그의 상처에서는 "신성함의 냄새"로 알려진 향기로운 냄새가 나는 피가 흘렀습니다.
비오 신부는 자신이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처럼 가시관과 채찍질의 고통을 체험하고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비오 신부가 겪은 극심한 통증에 대해서는, 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체험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합니다.
신부의 건강 악화의 원인 가운데 하나는 바로 이러한 영적 체험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생전에 그는 “나는 죽은 후에도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나의 진정한 소명은 내가 죽은 이후에 시작될 것입니다.”
성흔에 대해서는 무척이나 두렵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하루빨리 성흔을 지워 주시기를 바란다고 했다고 합니다.
비오 신부가 선종한 후 그의 몸에 나타났던 성흔도 자연스럽게 사라졌다고 합니다.
성흔은 일시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나 평생 이러한 상처를 지니고 사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로마 가톨릭 교황청에서 인정하는 성흔 현상은 약 320여건이 된다고 합니다.
성흔 현상에 대해 비기독교계 사람들은 조작된 자작극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대부분 성흔 현상이 처음부터 끝까지 누군가 타인이 있는 상태에서 목격된 적이 없다는것.
만약 그것이 신의 계시라면 한 번쯤은 그 상처가 생기는 과정과 피를 흘리는 과정, 치유되는 과정이 낱낱이
다른 사람들에게 목격 되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거의 모든 성흔의 경우 피가 흘러나오는 과정만이 사람들에게 공개된다고 해서, 의심스럽다는
주장입니다. 또 다른 주장으로 정신 질환과 지나친 신앙심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의학 저널에 드물지만 그런 경우가 보고 되고 있다고 합니다.
성흔 현상이 보고되면 교황청에서는 조사원을 파견해 그것이 자작극인지 기적인지를 가려낸다고 합니다.
<비오> 신부 사례는 교황청에서 신이 내린 축복이라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는 정신질환도 앓고 있지 않았으며 그에게 나타난 현상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목격되었고, 그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았으며, 사망한 후에 성흔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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