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지게 작대기
사회

아버지의 지게 작대기

by 림프사랑 2022.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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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고향은 겹겹이 산으로 삥 둘러싸인 마을로 밤나무, 감나무, 참외 과수원이

많아 먹을거리가 풍부했던 마을로 한적하고 조용하기 이를데 없는 그런 마을입니다.

그러나 하루 걸이로 울려 퍼지는 자식들 잡는 매타작 소리에 마을은 조용한 날이 없었지요.

 

뻐꾸기 한적하게 우지짖는 산골에서 울려 퍼지는 매타작 소리 들어본적 있으세요?

퍽!~ 윽!~  퍼버벅!~~ 으악!

당시 저희 마을에는 같은 또래 친구들 일곱이 있었는데, 지금은 맘 잡고 처자식 거느리고

살고있는 친구들이, 당시에는 매타작을 당하는 소리가 엄청 요란했었습니다.

 

가을 추수를 마쳤다 싶으면 밤마다

참깨니, 고추니 한 가마씩 들고, 들로, 읍내로 튀어서

다음날 저녁이나 돼야 나타나곤 했습니다.

 

그러면 그날 밤은 밤새도록 여기저기 울려 퍼지는 지게 작대기 춤추는 소리와

우리들의 비명소리로 동네사람들은 잠을 이룰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혹시 지게 작대기에 맞아보신 적 있으세요?

이게 원래는 지게 받히려고 만든 것인데 주로 자식들 패는 수단으로 이용되곤해서

맨질맨질 잘 다듬어지고 튼튼한지 제대로 정통으로 맞으면 거의 죽음입니다.

 

아흐! 그 아픔과 그 뼈져림은 안맞아본 사람은  절대 모릅니다.

세월이 약이라고 시간이 흐르니 그렇게 말썽 많고, 탈 많던 우리도 하나 둘씩 

정신차리고 군대도 다녀오고 장가도 가고 이른바 '철'이들기 시작하자 비로소

우리 마을에도 평화가 찾아오더군요.

 

그러던 어느 날, 제 나이 서른한 살때 추석을 맞아 모처럼 고향을 찾았는데,

객지에 흩어졌던 친구들도 고향을 찾아 하나 둘씩 모여들고 있었지요.

그날 우리는 마당에 모깃불을 피워놓고 식구끼리 옹기종기 둘러앉아 송편을 빚으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데 그때 누군가 절 부르는 소리가 들리더라구요.

 

"경석아, 경석이 안에 있냐?"

누군가 싶어 반가운 얼굴로 나가보니 고향 친구 영식이었습니다.

저보다 먼저 영식이를 발견한 저희  어머니는 영식이를 붙들고 그러시데요

 

"아이고, 이 누꼬? 니 영식이 맞나? 니 참 많이 컷데이. 니 코 찔찔 흘리면서

우리 집에 소금 얻으러 온 것 생각나나?"

그러자 영식이는 부끄러운 과거가 쑥스러운 듯 그러데요.

 

"하이고, 어머님요 제발 그 얘긴 하지 마시소.

집사람 보기 부끄럽다 아임니꺼 

지 나이가 몇인데요."

 

간단한 인사가 끝나자 저 영식이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지요.

"그래. 니 웬일이고?"

"니 있제. 오랫만에 윗마을 최씨 아저씨네 콩서리 한번 안할래?"

 

 

아, 그 말을 듣는 순간 '콩서리?' 그래 그게 언제였던가? 기억이 아련해지면서

추억이 밀물처럼 밀려오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단번에 맞장구를 쳤지요.

"좋아, 좋아. 우리 오랜만에 옛날 실력 나오나 한번 해보자."

 

우리는 '너들 어디 가노? 라고 묻는 어머니의 말씀을 뒤로 한 채 금방 돌아온다는

약속을 남기고 콩밭으로 뛰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콩밭에 도착을 하니 환한 달빛이 우릴 반기며

'애들아, 옛날처럼 확 꺽어서 구워먹어봐. 빨리 해봐.' 

이렇게 얘기를 하는 것  같더라구요.

 

이미 우리가 객지로 떠난 마당에 경계를 푼 마을의 콩밭은 우리들에게 접수 되었고, 

우리는 뭉텅뭉텅 콩을 꺽어 근처 밭에 불을 피우고 콩을 구워먹으며

어린 동심의 추억으로 빠져들었지요.

 

아! 서리는 역시 어릴 때나 다 커서나 그 맛은 언제나 죽이더만요.

그렇게 얼마나 콩을 먹었을까. 이번에는 제가 영식이에게 바람을 넣었지요.

"야, 우리 그라지 말고 배도 고픈데 강수네 집에 가서

몰래 씨암닭 한 마리 해갖고 쇠주 한잔 어떻노?

 

아! 역시 우린 환상의 콤비였습니다.

영식이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됐다 퍼뜩 가자' 하더니 벌떡 일어서더라구요.

그런데 강수네 집 닭장에 도착을 하니 예상치도 못했던 난관이 있었는데 

그건 누가봐도 변종이 틀림없는 누렇게 생긴 '성견'이 닭장과 강수네 집을 경호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누굽니까? 서리라면 거의 신의 경지에 오른 우리가 아닙니까?

우린 간단하게 마른 오징어 한 마리로 누렁이의 입을 막은 뒤 닭장으로 향했고 닭 모이에

미리 준비한 은단 몇 알을 닭에게 먹여 간단하게 기절시킨 다음, 뒷동산 아지트로 돌아와

통째로 구워 바베큐 닭 파티를 펼쳤지요.

 

 

"아후! 그럼 그렇지 우린 역시 환상의 콤비야 건배!!"

우리는 환호성을 지르며 부어라~ 마셔라! 했지요.

다음날은 추석이라 아침에 조상님 은덕에 감사하며 경건한 마음으로 차례를 지냈지요.

그런데 오후가 되서 날벼락이 나고 말았다는 거 아닙니까.

 

밖에서 낯익은 음성이 들려오는데 들어보니 그건 영식이가 틀림 없더라구요.

"경석아 경석아, 안에 있니?"

"어 그래. 니 또 웬일이고?"

저는 아무 생각도 없이 문을 열고 나갔지요.

 

그런데 아이고 조상님. 아니 세상에 최씨 아저씨와 강수 아버님께서 영식이의 양쪽 귀를

한 쪽씩 잡고 저희 집 마당에 서 계신게 아닙니까? 영식이는 괴로움을 호소하며 그러데요.

"아제요. 제발 이것 좀 놓고 얘기하시소. 예?"

 

그러나 최씨 아저씨와 강수 아버님은 결코 영식이의 귀를 놓지 않고 이번에는

저를 향해 냅다 큰 소리를 치셨지요.

"너거들! 아이고 , 이제 철들었나 싶었디만, 얘기 아버지가 되갖고도 옛날 버릇을 몬고치고.

경석이 아베 좀 나와 보소. 엉?"

 

저는 싹싹빌며 제발 아버지에게만은 비밀로 해달라고 했지만 그게 통하겠습니까?

드디어 아버지 나오시고 최씨 아저씨와 강수 아버지께 그러시데요.

"아이고, 미안하네. 내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하꾸마.

아이고 부끄러워 우짜노? 할말이 없데이."

 

결국 저희 아버지께서 백배 사죄하시고 재발방지 약속을 굳게 하시자 두 분은 집으로 돌아 가셨지요.

그런데 두 분이 돌아가시자 그 후 상황은 정말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연세가 일흔하나이신 저희 아버지께서 두 팔을 걷어 부치시고 뒷곁으로 가시더니

너무나 낯익은 작대기 하나를 들고 뛰어 오시더군요. 

 

 

그날 지게 작대기가 얼마나 춤을 추던지.

"너거들이 지금 나이가 서른 넘어 아부지가 되갔고 그라고 댕기나?

오냐! 너거들 오늘 한번 죽어봐라."

"퍼벅~~!! 퍽! 퍼버벅~~!!

 

저는 지게 작대기를 피해 이리저리 온 마당을 뛰어 다녔지요.

저는 우선 어머니께 빌었습니다.

"아이고. 엄니 아들 죽어요. 제발 아부지 좀 말려주세요."

그랬더니 저희 어머니 뭐라는 줄 아십니까?

 

"됐다. 고마. 손자 있는데 아들 하나 없는 셈 치면 된다. 영감, 마 더 두들겨 패뿌소!!"

옛날이나 지금이나 두 분이 어쩜 자식 패는 데는 그렇게 한마음이 되시는지.

그런데 정말 더 비극적인 건 뭔지 아십니까?

당시 우리 철없는 아들녀석이 대청마루에서 이 광경을 다 지켜보고 있었다는 거 아닙니까.

 

한참 보고 있던 다섯살 먹은 아들놈이 저보고 그러데요

"아빠, 많이 아프나? 할아버지한테 빌어... 때리지 말라고. 아빠 빨리 빌어.!!

그날 빗맞은 것까지 합쳐서 아버지 지게 작대기에 족히 여섯대는 맞았는데...

그날 밤 진짜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후로 우리 아들놈 툭하면 저하고 달리기 놀이하자고 하네요.

아들놈은 장난감 칼 들고 쫓아오고 저는 아부지 살려 주시소~ 하면서 도망가고요.

아니 이게 애비가 할 짓입니까?

 

제가 무슨 할말이 있겠습니까? 

서른이 넘은 나이에 할짓이 없어서 철없던 시절의 놀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추억삼아 또 다시 재현하다니... 아들에게 민망하기도 하지만...

 

아버지의 지게 작대기 힘은 떨어지지 않아서... 맞으면서도 기분은 좋았습니다.

그리고 저 잘못하는 일 있으면 또 지게 작대기로 때려주세요.

아버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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