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남자 대학생들에게 '여성의 어떤점에 매력을 느끼는지 알아보는 실험을 한다'고 알려주고
남자 대학생들을 실험실로 불러모읍니다.
그리고 남학생들을 의자에 앉힌 다음 팔에 전극을 연결하고 가슴에 마이크를 답니다.
실험자는 참가자들에게 전극과 마이크는 한 번에 한 장씩 보여줄 <플레이보이>표지모델에
반응하여 나타나는 생리학적 흥분을 측정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각각의 참가자는 다른 참가자들과 똑같은 사진들을 보았지만 순서가 달랐습니다.
스피커로 참가자의 심장박동 소리가 흘러나옵니다. 참가자는 실험자가 보여주는 사진을 한 장씩
바라보았고 여성의 사진이 얼마나 매력적이라 생각하는가에 따라 심장박동이 빨라지거나 느려집니다.
참가자들은 모르고 있었지만, 이들의 팔에 연결된 전극과 가슴에 단 마이크는 스피커와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것은 모두 속임수였습니다.
참가자들이 자신의 심장박동 소리라 여겼던 것은 사실 신시사이저의 음향을 테이프에 녹음해 놓은 소리였고,
심장박동 속도의 변동폭은 실험자가 미리 설정해놓은 것이었습니다.
실험이 끝나자 실험자는 심장박동 소리가 사실은 참가자의 심장박동과는 아무런 상관 없음을 알려줍니다.
가슴의 마이크와 팔의 전극이 어디에도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것도 보여줍니다.
참가자들은 잠시 동안 자기몸에서 일어나는 생리반응이 자신이 특정 여성에게 큰 매력을 느끼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그런 인상을 주었던 증거는 무효가 됩니다.
논리적으로 생각할때 만약 이성적으로 의사결정에 참여한다면, 참가자는 자기가 받은 인상을 지워버리고
신뢰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결론 내렸을 것이겠죠.
그러나 실제는 이와 같았습니다.
실험자가 감사의 표시로, 실험에서 봤던 <플레이보이>중에서 표지가 마음에 드는 것을 가져가도 좋다고
한 것입니다. 이 남학생들은 어떤 표지를 선택했을까요?
놀랍게도 스피커에서 심장박동 소리가 가장 빠르게 흘러 나왔을 때 본 사진을 골랐습니다.
모든 증거는 무용지물이 되었지만 한때의 그 믿음이 계속 남아서 그들의 판단을 흐리게 만든 것입니다.
<발린스>는 이런 일이 일어나게 만든 매커니즘이 '자기설득'이라 설명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하는 생리적 상태와 일관성 있는 믿음을 만들어내기 위해 인지적 노력을 기울입니다.
일단 그렇게 한 다음에는 이 과정의 결과가 비교적 오래 지속되어 변화에 저항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모르는 사이에 진행되는 판단의 오류입니다.
<니컬리스 에플리>는 '우리는 대부분의 경우 믿음의 구성방식, 그리고 그 구성에 이르기까지의
정신적 과정을 인식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증거가 분명하게 무효화되었는데도 그 믿음이 지속되는 것입니다.
'믿음 보존 편향'은 험담과 관련된 일상생활에서도 나타납니다.
인간은 자신감이 떨어지다가도 남들을 험담하면 자기가 그들보다 우월한 듯한 기분을 느낍니다.
험담은 충성심을 시험해서 타인과의 유대를 강화하는데도 이용되고 있습니다.
만약 내가 A를 험담하는데 B가 거기에 맞장구를 치며 끼어든다면 B를 동지라 믿는 식입니다.
험담의 문제는 그 내용이 거짓일 수 있다는 점이죠. 험담이 여러 귀와 입을 거치는 동안 모두들
거기에 한마디씩 보태거나 뺀 경우에는 특히나 그렇습니다.
'믿음 보존 편향'이 작용하는 탓에 노골적인 거짓말이나 사실의 왜곡에서 발생하는 잘못된 사회적 정보를
근절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이런 말도 안되는 험담의 피해 당사자가 되고 나면 경력이나 사회적 관계를 회복하기도 무척 어려워집니다.
우리의 뇌는 험담을 즐기는 것 뿐만 아니라 외부인에 대한 선천적인 의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외부인에는 우리와 다른 모든 사람이 해당됩니다.
잘못된 사회적 판단으로 이어지는 수많은 '인지적 착각'과 '내.외향집단 편향'이라고 알려진 현상도 존재합니다.
자기 집단(내집단), 또 다른 집단(외집단)에 소속된 사람들의 흥미,성격, 성향등이 얼마나 다른가? 판단해보라고
요청하면 외집단 구성원들 간의 유사성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내집단.외집단 효과에는 신경학적 편견이 들어 있습니다.
자기와 닮은 사람에 대해 생각할 때 흥분하는 뉴런 집단이 있는것 처럼ㅡ
우리는 어떤 집단이 되었든 자기 집단에 소속된 사람들은 하나하나 개인으로 보는 반면
외집단에 속한 사람들은 차별화가 덜 된 하나의 덩어리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신의 관점과 타인의 관점을 별개의 것으로 구분하여 타인의 생각.감정.지식등을
그 사람 관점에서 이해하는 능력을 '조망수용'이라고 합니다. 쉽게 말하면 '역지사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6세이하의 아동적 성향에서 벗어나 타인의 삶도 이해하는 성숙한 어른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세상을 돌아보며, 같이 가는 세상임에 틀림없습니다.
헐뜯고 험담하는 곳에는 항상 거짓이 숨어있습니다.
진실을 숨기기 위한 거짓 증언과 험담으로 내집단이 아니라 남의 집단이라 상관없다는
잘못된 생각은 부메랑처럼 자신에게 돌아옵니다.
명확하지 않은 사실을 가지고 우왕좌왕한다면 그만큼 다른 세계는, 다른 나라는...
더 멀리 질주하고 있는것을 깨닫지 못하는 안타까움만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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