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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최초탄생
두부는 기원전 2세기 한나라 무제 때 회남왕 [유안]이 [연단술]을 익히던 중 우연이 탄생한 것으로 여러 문헌에 나온다. 왕은 학문을 좋아하여 [회남왕 만필술]이라는 자연과학에 관한 저술을 하고있는데 그 가운데 두부 만드는법이 적혀있다 한다. 이 유안의 생일날인 9월 15일을 '두부의 날'로 정한 중국에서는 대만과 합동으로 대대적인 두부문화제를 갖는다 한다.
한국두부ㅡ다양한 발달
두부는 고대 중국에서 발명되었지만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가장 다양하게 발달하고 있다.
처녀의 고운 손 아니고는 문드러진다는 [연두부], 콩즙 끓일 때 적당히 태워 만드는 [탄두부], 모로 굳히기 전에 먹는 [순두부], 삼베로 싸 굳히는 [베두부], 명주보로 싸 굳히는 [비단두부], 기름에 튀기는 [유부], 콩즙 끓일 때 생기는 피막인 [두부피], 닭곰탕에 굳히는 [연포], 산 미꾸라지를 두부속에 뚫고 들게하여 먹는 [약두부] , 새끼줄로 묶어서 들고 다녔다는 [막두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기 이를 데 없다.
두부를 아는 나라
예로부터 두부를 먹어온 나라는 한국, 중국, 일본, 미얀마, 인도네시아뿐이라던데 우리나라 이외의 나라에서는 두부의 가지수가 3~5가지가 고작인 것과 비교해 봄직하다.
조선시대
세종 14년 12월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박신생]이 명나라 황제의 칙서를 갖고 왔는데 조선에서 보낸 궁녀들의 음식솜씨를 극찬하고 특히 두부 만드는 법이 절묘하다 하여 앞으로도 두부 잘 만드는 여인을 골라 보내 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에도 명나라 사람들에게 조선 두부가 입에 맞았는지 조선에서 공급하던 식단을 보면 장수부터 병졸까지 모든 식단에 두부가 있었다고 한다. 단, 그 당시 두부 제조엔 적지않은 비용이 들었기 때문에 반대급부로 병졸과 장군을 막론한 조선군의 식단이 부실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조선 시대에는 두부를 보존식품의 일종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물기를 극한까지 짜내고 만들어서 무지막지하게 단단해진 두부를 새끼줄로 묶어서 들고 갔다고 하며, 두부를 들고 있는 사람이 시비가 붙어 두부를 휘둘렀더니 철퇴를 맞은 양 머리가 깨져 즉사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일본 당인두부ㅡ박호인두부
일본에서 가장 전통이 오래되고 맛도 으뜸이라 하는 [고지]의 [당인두부]는 바로 임진왜란 때 납치돼어간 경주인
[박호인]이 퍼뜨린 것으로 고증되고 있다.
이같은 역사적 사실들은 두부 문화권의 3대국인 중국, 일본, 한국에서 우리한국이 가장 뛰어난 두부문화를 누렸다는 증거가 아닐 수 없다.
조포사의 의미
고려 때부터 임금님의 무덤에는 명복을 비는 원찰을 짓게 마련인데, 이를 조포사라 했다. 두부 만드는 절간이란 뜻이다. 산릉제수의 주종이 두부였기 때문이요, 두부문화 발달의 온상이 이에 있다고 본다.
예부터 소문난 두부로 [연경사]두부와 [봉선사]두부를 쳤는데 연경사는 개성에 있는 이태조비의 조포사요, 봉선사는 광릉에 있는 세조의 조포사이다.
고려말 성리학자 이색
한국 문헌중에 두부가 등장하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 고려말의 성리학자 목은 [이색]의 [목은집]에서 이다.
현재까지 발견된 자료를 기준으로는 한국으로 두부가 전해진 시기가 대략 고려 후기쯤이었을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한다.
<대사구두부내향(大舍求豆腐來餉)>이란 시(詩)ㅡ이색
나물죽에 오래 맛을 못 느끼더니
두부가 삼박하게 맛을 돋우네
이빨이 성근하여 먹기 좋고
늙은 몸 양생하여 더욱 좋다
물고기순채는 남쪽 월나라가 으뜸이고
양락은 북쪽 되놈 것이 으뜸이라면
우리 땅에서는 두부가 으뜸인지라
※양락: 양젖의 지방질을 굳혀서 만든 식료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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