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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결혼 ㅡ바빌론 왕국]
기원전 4000년의 바빌론 왕국에서는 경매결혼을 했었다 한다.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보면 1년에 한 번 날을 잡아 마을의 광장에다 혼기의 아가씨, 재혼하고 싶은 과부들이 상장이 된다. 경매이기에 미인일수록 값이 오른다. 분에 맞게 낙찰되게 마련인데 나이든 과부나 추녀나, 불구녀는 지참금의 과다로 선택되어 팔려나간다. 바빌론에서는 젋고 예쁜 과부는 신분상 여느 처녀와 동등한 대우를 받았고, 늙은 과부도 지참금만 있으면 재가를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로마의 과부도 행복한 편이었다. 철학가 [세네카]의 기록이 그것을 입증한다. "고귀한 부인들은 재혼 횟수를 훈장으로 안다. 결혼하기 위해 이혼하며, 이혼하기 위해 결혼한다. 이혼녀나 과부라는 것이 수치가 아니라 영예인 것이다" 고ㅡ |
[유쾌한 과부의 왈츠]
19세기 낭만파 시인들이 앞다투어 과부의 우수미를 읊고 비엔나의 무도회에서 [유쾌한 과부의 왈츠]가 울려퍼진 데는 그만한 회교국가에서도 신분에 따라 사별이나 이혼한 지 100일 내지 150일만 기다리면 과부는 재가할 충분한 자격을 얻었다. 중국에서도 중세 이전의 과부는 법적. 도덕적 구애를 받지 않았다. 성인군자인 공자의 며느리는 그의 남편 [백어]가 죽자 [위]에게 개가하고 있다. 한나라 [주매신]의 처는 매신이 가난하다 하여 남편을 버렸고, 당의 [양지견]의 처는 고대광실 비단옷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고 남편을 버리고 과부를 선택했다. 과부에 대해 이 세상에서 가장 가혹한 나라는 인도와 우리나라가 아닌가 싶다. |
[사티ㅡ끔찍한 살인]
인도의 힌두교에서 사람이 죽으면 갠지스 강변에서 화장을 한다. 남편이 죽어 화장하는 그 불길에 미망인은 뛰어들어가 같이 타죽는것이 미덕이 돼 있다. '사티'라 불리는 이 과부순사를 아무리 법으로 금했지만 인습에 젖어, 적지 않은 과부들이 지금도 끔찍한 수난을 받고 있다고 한다. 심각한 가부장제 사회인 인도에서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나는 것은, 여성들에게 끔찍한 재앙이나 다름 없다. 과부는 친척들로 부터 가문의 남성들 중 한 명과 동침할 것을 강요당한다. 왜냐하면 남편이 사망할 경우 그 재산이 전부 아내에게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자는 남편을 잡아먹었다는 낙인이 찍혀 일평생을 집안에서만 살아야 한다. 힌두교 관습에 따라 과부들은 재혼도 못하며, 다른 남성을 유혹해서는 안 된다면서 머리카락을 전부 깎아서 대머리인 채로 있어야 하고, 장신구를 걸치는 것과 하얀 옷 외에 다른 색깔의 옷을 입는 것 또한 금지한다. 하지만 차라리 그렇게 감금과 멸시를 당하며 사는 것이 다행으로 여겨질 정도로, [사티]는 매우 끔찍한 풍습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불 속으로 뛰어들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반항이 심해 환각제를 먹인 채 기둥에 묶는다고 할 정도다. 더 안타까운 사실은 화장이 밀폐된 공간이 아닌 바깥에서 행해지기 때문에 시신이 불타기까지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과부는 길면 10시간이 넘도록 숨이 끊어질 때까지 불태워지게 되어 말그대로 끔찍한 죽임을 당하게 된다. 그녀들은 처음에 온몸이 불타는 고통 때문에 비명을 지르지만 전신이 3도 화상으로 뒤덮이고, 신경이 죽어있을 때쯤이면 고통이 느껴지지 않으며, 그렇게 자신이 죽어가는 것을 서서히 지켜보다가 생을 마감한다. 인권에 대한 개념이 적은 국가에서조차 사형시 사형수를 최대한 고통 없이 죽인다는 점에서 [사티]는 몹시 잔혹하고 끔찍한 생화형 이었던 것이다. |
[조선명륜록]
우리나라도 남편따라 죽는 순절은 미덕이었다. [조선명륜록]에 보면 남편의 죽음에 이어 목매어 순사하는 것이 가장 명예로운 1등 과부요, 젖먹이를 키워놓고 죽는 것이 버금가는 2등 과부이며, 굳이 죽지는 않더라도 평생 수절하는 것이 3등 과부다. 1등.2등 과부가 탄생되면 그집 앞에 정문을 세워 각종 부역과 세금을 면해 주었기로... 가문에서 순절하지 않을 수 없게끔 압력을 가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했다. |
[과부 콘테스트]
태국, 방콕에서 과부와 이혼녀들의 인권을 신장하기 위한 [과부 콘테스트]를 벌여 이목을 끈적이 있다. '커플시대에서 싱글시대로!', '독신은 아름답다'는 등의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이 콘테스트를 시작으로 세계적인 호응을 받아~ 세계적인 과부들의 목소리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남편을 따라죽지 못했다는 '미망인'이라는 비인간적이고 미개한 말이 존칭으로 쓰이고 있던, 우리나라는 이 과부운동이 새삼스런 돌파구처럼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다. 과부에 대한 비인간적이고, 비도덕적 인권에 대한 정당한 인권선언 이었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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