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워드비처> 목사는 뛰어난 설교자로 알려져 있던 분입니다.
그분이 사망하자, 목사의 후임인 <라이만 아보트>가 교회로 초정되어 처음으로
설교를 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헨리 워드비처>의 설교 못지 않은 설교로 인정받기 위해, 그는 열심히 설교의 초고를
쓰고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서 퇴고를 거듭하게 됩니다.
그것이 완성되자 먼저 아내에게 들려주게 됩니다.
"재미가 없어요. 이래가지고는 듣는 사람들이 졸겠어요.
마치 백과사전을 읽고 있는 것 같아요. 여러 해 동안 설교를 해왔으면서도
그런 것도 몰라요? 좀 더 인간미 있게, 자연스럽게 써보세요. 그런식으로
설교를 했다가는 창피만 당할 거예요"
이런 식으로 말했을까요?
아내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원고는 북미 평론잡지에 실리면 훌륭하겠어요"
그의 아내는 이렇게 말했을 뿐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칭찬과 아울러 연설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사실을 내비쳤던 것입니다.
물론 그 역시 아내의 의도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완성한 초고를 찢어버리고 메모조차 없이 훌륭한 설교를 하게 됩니다.
당신의 동기가 순수하고 옳다고 할지라도, 제3자 앞에서 비난하면 상대방의 태도는
자존심을 충분히 상하고도 남는 상처로 남는다는 사실입니다.
상대방은 제3자 동료들 앞에서 체면을 잃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상대방을 위한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수치심을 심어줌으로써 자기만족을 얻으려는
데 있다고 생각하게 되고, 그 비난의 진정한 동기를 의심하게 됩니다.
자녀에 대한 부모의 태도도 역시 그렇습니다.
자녀들도 절대로 다른 친구들 앞에서 나무라서는 안됩니다.
그들도 인격체이기 때문에 그런 경우 부모를 원망하는 마음이 들게 됩니다.
특히 부부 사이에서 지난날의 잘못을 들추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난날의 잘못을 들추어낸다고 해서 상대방의 현재의 행동을 향상시킬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오히려 서로에게 상처를 계속 안겨주는 반대의 결과를 초래할 뿐입니다.
상대에게 수치심을 안겨주려는 의도가 아닌, 진정한 성과를 위한 것에 주목해 주어야만
비난의 성과가 오르게 됩니다.
비난은 '싸움에서 이기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일의 성과를 올리는 데 있다.'는 사실이
매우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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