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학(易學)이란 무엇일까요?
사회

역학(易學)이란 무엇일까요?

by 림프사랑 2023.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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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학(易學)이란 무엇일까요?

 

사람은  누구나 한번쯤은 어디에서 와서, 무엇을 어떻게 하다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생각하게 됩니다.

과연 오늘을 살고 있는 '나'라는 존재는 무엇일까? 하는 의혹이 생기기도 합니다.

 

이 문제는 삶에 주어진 영원한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동양에서는 옛부터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철학적인 탐구가 있었으니,

이것이 바로 역(易:바꿀역)이라고 합니다.

 

자연된 그 법을 알고 헛된 욕망을 씻고 대자연과 함께 사는 것이, 분수를 모르고 자기 

욕망에 이끌려 고해(苦海:괴로운바다)에 허덕이는 것보다 훨씬 좋을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자연의 분수만 믿고 노력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합당하지 않은 허욕

이끌려 백해무익한 노력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연과 인간, 우주와 인간을 밝혀놓은 학문이 바로 역학(易學)인데, 역(易)이라는 글자는

변화 즉, 모든 것은 고정되어 불변하는 뜻만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에 변화를 거듭한다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변화에도 일정한 법도가 있어서 동정(動靜)의 조화(調化)를 얻어 생(生)을 유지하게 된다

뜻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모든 일과 물건이 그 근본되는 원리가 있음으로써 만들어지듯이

그 이치를 탐구하여 인생관, 세계관 그 밖의 모든 것의 올바른 길을 밝히는 것역학의 뜻이라고

합니다.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영생불멸을 간절히 원하지만 인간인 이상 정해진 몇몇 해를 고비로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우주는 언제나 변화의 과정 속에 있으며, 그 변화를 있게 하는 어떤 절대자를 신(神)

이라 명명하고 천지자연의 변화 현상으로 인간계의 변화 현상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낮이 밤이 되고, 밤이 낮으로 변화하는 것은 역(易)이라 합니다.

밝음이 어두움으로 바뀌고, 어두움이 밝음으로 변화하는 것도 역때문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인간이 태어나고 죽는 것도 역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모든것을 연구하고 발전을 거듭해 온 과학 덕분에 그동안의 어둠을 이해하고 밝은 태양의 의미도 

알 수 있었지만, 인간과 동물과 자연을 만드는 신의 존재는 과연 무엇일까요?

과학으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비과학적인 부분이 아직도 많이 존재합니다.

 

 

역(易)과 운명(運命)

 

흔히들 역(易)을 '점(占)' 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점(占)' 보는 것이란 말로 역(易)의 뜻을 설명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확실히 역(易)은 인간사의 길흉화복을 미리 알아 보려는 염원에서 생겨난 점서(占書)라는 사실도

틀림없지만 그것이 점서이상의 철학으로, 진리를 나타내는 학문으로 받아들이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점의 근본을 우연이나 요행이나 숙명에 둔 것이 아니라 천지자연의 섭리에 입각해서 인간사를

풀이한 것이 역의 철학으로서 가치를 지니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점이라는 것을 미신시(迷信視)하고 있습니다.

숙명, 운명, 섭리니 하는 말과 '약한 자의 하소연' 을 동일시 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사물은 역과 관련되어 있지만. 역 자체는 절대적인 것으로 그 자신으로부터 세계를 창조합니다.

세계가 역은 아닙니다. 창조역이 지닌 스스로의 본성이 표출된 것입니다.

역이 지닌 재생의 힘영원히 생산적입니다. 절대로 변화하기를 중단하거나 낡은 것으로부터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기를 정지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우주 삼라만상(森羅萬象)의 하나입니다.

신(神)이 어떤 베틀로써 천을 짤 때 짜지는 그 천을 운명이라고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어떤 베틀에 대해 연구, 분석하여 짜지는 천을 예견하는 것을 운명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주 공간의 자연 법칙 속에서 강하게 특정지어지는 연속적인 사건의 일체감에 지배되어 초인간적인

힘과 사고 감각, 신앙등으로 맞서 초월해 나가는 것과 생명을 걸고 무작정 버티어 나가면서 기지와

수단을 동원하여 현상황을 연장해 낸다던가 역부족으로 현실 상황을 도피해 버리는 등의 모든 행위는

운명의 당위성이라고 합니다.

 

인간적인 상황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을 가지고 있지만 근세 이후 스토아(Stoa)학파에서 

에피쿠로스(Epikouros)철학자들의 '운명 부정론'를 공박하고 나섬으로써 운명론의 자가당착

빠지기도 했고, 니이체(F.Nietsche)"네 운명을 사랑하라"라는 운명적인 인간 사랑론 이후에는

 

변증법 신학자인 바르트(K.Barth)에 의해 물리적인 자연 현상물질과의 연합성, 그리고

인간과 신과의 제휴, 인간과 짐승의 자연 복귀로 인한 완전한 자유 의지로써 '빌레 그래함' 목사의

성서적인 운명론에 돌아서는가 싶더니, 영국 가수 '비틀즈' "내 버려 둬(Let it be)" 와 유태인

'캐롤킹'의 "너무 늦었어요(It's too late)"허무와 권태에서 오는 버림받음으로 통곡하는 운명론으로

지치고 썩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까뮈같은 사람은 '부조리'라는 개념으로 인간 안에 있는 삶의 이치를 찾으려 하는 미칠듯한 욕망

이 삶의 밝혀지지 않는 모습의 갈등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운명은 베일에 가려 전혀 알 수 없는 것만은 아니라고 합니다.

 

운명론은 운명을 알되 그 알아낸 운명대로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운명의 변화하는 모습

이해하고 그렇게 계속 변화를 거듭하는 운명을 있게 하는 본질적인 우주의 힘과 하나가 됨으로서

생명력이 무한히 솟아나오는 기운찬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자기 눈 앞에 변화하며 펼쳐지는 현상의 세계에 집착하여 나약해지지 말고 현상 세계에 내재하는

자연 필연의 법칙, 소위 근원의 이치를 알아 현상 세계에 있는 듯 보이는 저항과 모순을 초월하라

것입니다. 생에 대한 모순과 저항에 부딪칠 때에는 도피하지 않고 긴장과 세심으로 대처합니다.

 

특히 사람은 마음의 평정을 보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것뿐만 아니라 선악시비(善惡是非)에 갖혀 있는 마음이 없어져야 합니다.

운명은 인간의 제한된 지식이 아니라, 자연과 우주를 볼 줄 아는 완전한 지혜를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현상의 흘러감에 빠지지 말고, 자연현상과의 조화를 이루고, 마음을 만물과 더불어 자신의 세계

창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 본질의 운명과 정면으로 만나는 길이며, 나쁜 운명으로부터 해방되는

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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