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사회적으로 상호작용하면서 서로 잘 지내기 위해서는 영장류의 타고난 공격성을
누그러뜨려야 하는 부분이 상당히 많습니다.
일반적으로 영장류는 가장 사회적인 종에 해당하지만 한 집단에 수컷 개체를 열여덟마리 이상
두고 살아가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고 합니다.
그 선을 넘어가면 서로 간의 긴장과 지배 경쟁이 너무 커져서 집단이 분리됩니다.
그런데 인간의 경우, 수 천년 동안 수만 명의 남자가 함께 도시를 이루며 살아왔습니다.
어떻게 그럴수 있었을까요?
많은 사람이 가까이 붙어사는 데 도움이 된 것 중 하나는 대립을 피하는 화법, 즉 '간접화행'입니다.
자기가 실제로 원하는 것을 대놓고 이야기하지 않고 암시만 합니다.
철학자 <폴 그라이스>는 이것을 '함축'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A남성과 B여성이 한 사무실에 앉아 있는데, B여성은 창문 옆에 앉아 있다고 가정해 봅니다.
A남성은 덥습니다. 그럼 그는 이렇게 말할 수 있겠죠
"창문 열어요" 이 말은 아주 직설적이어서 B여성을 기분 상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만약 두 사람이 직장동료라면 B여성은 A남성을 보며 윗사람처럼 이래라 저래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대신 A남성이 이렇게 말했다고 해보면 "와, 날씨가 굉장히 덥네요"
그는 직설적이고 대립적인 방식을 피해서 자신의 의도를 암시합니다.
이 정도로 얘기하면 B여성은 보통 그가 단순히 날씨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창문을 열어주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음을 알고 거기에 동조하는 척합니다.
이 시점에서 B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몇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1. B여성이 A남성에게 미소 지으며 창문을 엽니다. 이것은 자신이 이 작은 사회적 게임에
참여하고 있으며 이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말의 의도에 협조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입니다.
2. B여성이 이렇게 말합니다. "진짜요? 난 좀 추운 거 같은데." 여기서도 역시 B여성은 게임에
참가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지만 기본적 사실에 대해 의견이 다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A남성은 협조적인 행동은 그대로 포기하거나 아예 판돈을 키우는 것입니다.
판돈을 키우는 것은 대립과 공격성을 높일 위험을 감수하는 행동입니다.
3. B여성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맞아요. 그렇네요." 이 말을 어떤식으로 하느냐에 따라 A남성은
이 반응을 장난기 많은 농담으로 받아들일 수도, 무례하게 빈정대는 말로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전자의 경우 여성이 남성에게 좀더 명확하게 얘기할 것을 요청한 것입니다.
사실상 이렇게 돌려 말하는 것은 게임을 그만두자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두사람의 관계는 충분히 확고하기 때문에 여성이 남성에게 직접 대놓고 얘기해도 좋다고 허락해주는 것입니다.
후자의 경우 여성이 비꼬는 투로 얘기했다면 남성이 말한 전제조건에는 동의하지만(덥기는 덥다) 자기가 유리창을
열어주고 싶지는 않다는 뜻을 전달한 것입니다.
4. B여성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나도 더웠는데 스웨터를 벗으니까 괜찮아요 드디어 난방을 가동하나 봐요."
이 경우에는 대립이 덜합니다. 여성은 전제조건에는 동의하지만 거기에 대처하는 방법에 대한 암시에는 동의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은 여성이 남성의 문제 해결을 도우려 한다는 점에서는 협조적이지만 의도한 바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5. B여성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죠. "웃기지 마요" 이 말은 여성이 함축 게임에 참가하고 싶지 않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으로, 더 나아가 그 안에 공격성까지 담고 있습니다.
이 시점에 남성이 선택할 수 있는 범위는 제한됩니다. 여성의 말을 아예 무시하거나(사실상 패배를 인정하는 꼴)
자리에서 일어나 여성의 책상 앞을 쿵쿵거리며 지나가 유리창을 쾅하고 열어젖히는 것(지금부터 전쟁이야)
'말의 행동'의 간단한 사례는 화자들이 내뱉은 말이 말 그대로의 의미를 전달하는 경우이지만,
'간접화행'은 우리가 함께 어울려 살게 해주는 강력한 사회적 역할을 합니다.
그 안에서 화자의 의도는 자기가 내 뱉은 말 그대로이지만 더 추가되는 의미가 있음을 알게됩니다.
'간접화행'은 본질적으로 '놀이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언어의 '숨바꼭질 놀이'에 참여하는 초대장으로 '내 말을 이해할 수 있겠어?'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철학자 <존 설>은 '간접화행의 작동 매커니즘은 화자와 청자에게 세상에 대한 공통의 표상을 환기시키는 것'
이라고 말합니다.
화자와 청자는 모두 언어적이면서 사회적이기도 한 공통의 배경 정보에 의지합니다.
이런 공통의 지식에 호소함으로써 화자와 청자는 어떤 약속을 만들어내고 그들의 공통 세계관을
확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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