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사로운 햇살과 맑은 공기와 바람, 흐르는 물소리, 새파란 나무잎, 나에게 필요한 음식들...
이 모든 것들이 모여 내 생명을 지켜주는 고마운 존재들입니다.
이렇듯,내 생명을 유지시켜 나가는 것은 모두 내 몸 밖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것들이 병들면 내 몸이 병들고,
그것들이 건강하면 내 몸도 건강해 집니다.
마찬가지로 내 마음을... 내 마음되게 하는 것도 내 존재 밖에 있습니다.
나와 관계 맺은 사람을 평화롭게 하면... 내 몸도 마음도 평화롭고,
그를 괴롭히면 내 마음이 괴로움을 당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성장 시키려면 나를 초월한 삶이어야 합니다.
가정을 위한다면 내 마음이 가정만해지고,
나라를 위한다면 내 마음은 나라만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계와 인류를 위한다면 내 마음도 세계와 인류만 해지는 것입니다.
성현들을 보십시요.
그들이 세계와 역사에 모든이들의 추앙을 받는 것은 살아 생전에 세계와 인류...
그리고 역사의식을 가지고 살았던 삶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반면에 나를 나 이하로 떨어뜨리는 것은
내 주변의 누군가가 나를 속이거나 괴롭힐 때 그렇습니다.
즉 나를 함부로 하면 내 속의 내 마음이 망가지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감옥과 같은 제한된 공간 속에 홀로 갇히는 것을 두려워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몸은 공간 속에 가둘 수 있어도 마음은 가둘 수 없는 것으로
마음은 언제나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속에... 내가 갇히는 것처럼 고독한 것은 없습니다.
그 고독은 자기 스스로 해방시키지 않으면 그 누구도 해방시켜 줄 수 없습니다.
누군가를 그토록 미워한다면 내 마음속에 내가 갇히지 않나요?
그래서 미움은 '갇힘'이요, 사랑은 '해방'과도 같습니다.
종교에서 사랑을 가르치는 것도 자기로부터의 해방을 위함입니다.
그런데 그 종교의 이름 속에 또 다시 갇히는 이가 있으니
그는 진정한 '해방'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죽음만 해도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핍박하고 그의 육신을 죽음에 이르게 했을 때,
그의 영혼까지 죽음과 함께 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몸은 죽일 수 있었어도 마음은 죽일 수 없었습니다.
예수는 영혼이 되살아 나서 세계인류의 머리가 되었습니다.
반면에 예수를 죽인 자들은, 죽인 그 마음 자체가
이미 죽은 마음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나를 나 되게 하는 것은 상대방을 존중하고 사랑할 때
진정한 나를 찾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반면에 나를 망치는 것은 상대방을 무시하고 괴롭힐 때
내 마음도 같이 망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나를 나 되게 하고 싶으면...
상대를 사랑하고 배려하십시요.
자연적으로 같이 이루어집니다.
자연속에 하모니를 같이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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