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의 작은 물은 그 흐름을 바꿀 수 있지만,
해류와 같은 큰물의 흐름은 바꿀 수 가 없다.
방안의 온도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지만,
계절을 바꿀 수는 없고,
밤낮을 바꿀 수도 없다.
오늘 하루 스케줄은 바꿀 수 있어도,
운명의 흐름은 바꿀 수 없고,
국가나 개인의 사소한 일들은 인위적으로 조절이 가능해도,
자연을 조절할 수는 없다.
큰 산이 작은 산을 누르는 법이 없고,
계절이 바뀌는 법이 없고,
밤과 낮이 바뀌는 법이 없다.
억겁의 세월을 겪으면서도 그 흐름에 순응하므로
자연의 질서가 유지되었던 것이다.
자연의 흐름을 거역하면, 그에 대한 새로운 재앙이 나타나곤 했었다.
21세기 자연을 보면서 사람들이 배워야 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자연을 자연스럽게 두지 않고, 필요 이상으로 간섭을 해서 자연을 이용하고 있다.
조상이 저질러 놓은 자연에 대한 훼손으로
후손들은 벌써부터 지구를 염려해야 하는 처지가 되고 있다.
개인의 분노는 사소한 화풀이로 마무리 될 수 있지만
자연의 분노는 인류의 존망과 재앙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하나의 생명이 존재하려면 자연의 보호를 받아서 어미가 뱃속에 몇달을 품고 키워내야 한다.
그렇게 모든 생명이 탄생하는데 걸리는 시간과 노력이 있었기에 많은 인류와 동물들의 자손들이 태어났다.
그러나 이제는 인류의 존망이 멸망으로 이어지는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인간이 지켜나갈 수 없을 정도로
발전이란 이름아래 자연이 심하게 훼손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발전이란 이름으로 자연을 파괴하고, 평화라는 이름으로 전쟁을 일삼고 있으니,
인류는 스스로 파괴와 자멸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인간세계의 실상을 두고 첫 조상인 에덴의 카인을 허물하겠으며,
소돔성의 타락을 손가락질 하겠는가?
곁눈질로 잠시 보면 이보다 더 좋은 세상이 없었다고 착각할 수도 있겠지만
마음의 눈으로 그 속을 들여다 보면 이보다 더 타락한 시대가 있었던가 싶다.
발전은 곧 엄청난 자연의 훼손이다.
계절의 흐름에 순응하고, 스스로 조화롭게 균형을 유지해가는 자연스러움에서
삶의 의미와 방향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제는 더 이상 자연을 파괴하면 안된다.
자연을 보호하면서, 자연으로 되돌아 가야 한다.
삶의 철학에 자연스러움으로 보편화시켜서
그것을 일반화 시켜야하는...
자연의 인류로 다시 되돌아가야 한다.
'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정의 질서 (20) | 2022.06.25 |
---|---|
모자람과 조화 (26) | 2022.06.24 |
마약밀매와 킬러축구선수 코르테즈 (26) | 2022.06.22 |
동물들의 출산의 기쁨과 아픔 (24) | 2022.06.21 |
백로와 하이애나 새끼들의 생존경쟁 (28) | 2022.06.2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