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언제 누가 만들었을까?
사회

라면 언제 누가 만들었을까?

by 림프사랑 2022. 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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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8월 25일 일본 닛신식품이 처음 시판한 치킨 라면ㅡ 제품 출시 당시 우동 사리 1개(6엔)의 6배에 이르는 35엔의 가격에 판매됐다.

 

인스턴트 라면을 발명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닛신 식품>의 창업자 <안도 모모후쿠>라고 합니다.

당시 심각한 식량 부족을 겪고 있던 일본에서는 라면을 먹는 것에도 길게 줄을 서서 기다려야만 했죠.

 

지금이라면 '줄 서서 먹는 라면 집'에 가는 것이 즐거움 중 하나일지도 모르지만,

그때는 물론 그런 놀이 기분이 아니었죠~

그때 먹어두지 않으면 언제 제대로 된 음식을 먹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시대였던 것입니다.

 

눈앞에서 그런 고생을 목격한 <안도>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가정에서도 손쉽게 먹을 수 있는 라면을 만들기로 결심하고,

1958년 오사카 자택 안의 오두막집에서 완성 한 것이 <치킨 라면>입니다.

 

안도는 당시 이미 48세였지만, 개발의 고비 단계에서는 매일 1~2시간 밖에 자지 않고 매달렸습니다.

개발에는 몇가지 어려운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죠. 

 

1.첫째는 우선 면을 건조하는 방법이었습니다.

 

보존을 위해서 면은 완전히 건조시켜야 하고, 먹을 때에는 뜨거운 물에 스르륵 풀어지지 않으면 안되었죠.

그러나 이것이 어떻게 해도 잘 되지 않았던 겁니다.

생각을 거듭한 끝에 어느 날 갑자기 떠오른 것이 면을 기름에 튀기는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는 거예요.

 

순간적으로 튀기면 면 속의 수분이 한꺼번에 증발, 완전히 건조된다는 것을 생각해 낸 것입니다.

덧붙여 말하면 튀김에서 부글부글 거품이 나오는 것은 수분이 나오기 때문이죠.

그리고 말린 면에 뜨거운 물을 부으면, 수분이 빠져 나가면서 생긴 무수한 작은 구멍으로,

수분이 스며들면서 원래 상태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사실 이 아이디어는 부인이 튀김을 만드는 것을 보고 힌트를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생각하고 생각한 끝에 작은 것을 보고 큰 아이디어를 얻은 것 이었습니다.

 

2. 두번째는 스프도 어려웠다고 합니다.

 

면에 첨가하거나 나중에 조미하거나 하는 다양한 방법이 떠올랐다가 사라지고, 사라졌다가 떠오르고,

이런 문제가 하나씩 해결되면서 인스턴트 라면은 완성 되었다고 합니다.

 

일본 오사카 라면 박물관

컵라면 개발의 중요한 힌트

 

1966년 닛신식품의 창업자 <안도 모모후쿠>가 LA에 치킨라면을 팔러 갔을 때 

바이어에게 시식행사를 부탁하니, 그들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난감해 했다고 합니다. 

미국에는 젓가락도, 라면을 담아 먹을 그릇도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였겠죠~

 

상대방 구매 담당자가 면을 부수어 종이컵에 넣고 포크로 시식하는

것을 보고 아이디어가 퍼뜩 떠오른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서양인들의 식습관이 컵라면 개발의 중요한 힌트가 되었다고 합니다.

 

1971년에 출시된 컵라면도 안도가 고안한 것 이었습니다.

안도의 이런 아이디어맨 스타일은 옛날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아직 TV가 비싸서 길거리 TV에 사람들이 모여 있던 1960년에 벌써 상업광고를 활용하여 매상을 늘렸다고 합니다.

 

이런 아이디어의 비결은 바로 메모라고 합니다.

언제 어디서고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바로 적을 수 있도록 한시도 메모를 손에서 떼어놓지 않았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잘 때도 반드시 머리맡에 준비해 둔다고 합니다.

 

아무리 멋진 아이디어라도 사라져 버리면 의미가 없어집니다.

수많은 아이디어는 부지런히 적어놓은 메모에 의지해 온 것이라고 합니다.

 

세계 최초로 우주식 라면 '스페이스 라무'를 개발

 

2005년에는 세계 최초로 우주식 라면 '스페이스 라무'를 개발하기도 했습니다.

무중력상태에서 면과 국물이 분리 되지 않도록 하는 기술은 수년간 연구끝에 개발에 성공했고,

디스커버리호에 실려 우주까지 가게되었다고 합니다.

 

2006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라면총회'에서 안도회장은 라면의 이상적인 영양균형비율은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이 60 : 27 : 13 이라고 제시하며 

2007년 향년 97세의 나이로 떠날 때까지도 그는 내가 이렇게 건강한 것은 라면이 건강에 좋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아니겠느냐"며 라면의 풍부한 영양성을 확실히 검증받아 누가 먹어도 안전한 라면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놓지 않았다고 합니다.

 

닛신라면 창업자ㅡ안도 모모후쿠

 

첫출시된 삼양라면 ㅡ5년뒤 1963년 출시

 

한국 삼양라면 첫 출시ㅡ1963년

 

한국에서는 인스턴트 식품으로 만든 일본 라멘에서 영향을 받아 처음부터 인스턴트 식품으로 출시했습니다.
1963년 9월 15일에 삼양라면을 원조로 하여 인스턴트 라면이 처음으로 출시되었습니다.

1950년대 말 보험회사를 운영했던 전중윤 삼양식품 회장은 일본에서 경영연수를 했을 적에 접했던 인스턴트 라면이

당시 경제가 어려워 먹을 것이 없는 한국 사정에 맞을 것같아 들여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당시 출시했던 제품은 맛이 한국인의 입맛에 그다지 잘 맞지 않아 별 인기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도 그럴것이 당시 삼양이 출시한 라면일본의 식품의 제조법을 그대로 가져온 일본식 치킨라면이었고

이 때문에 닭고기 국물을 재현한 수프라서 느끼한 맛이 났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포기할 수 없었서,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회사 내에 스프관련 실험실을 설치하는 한편

종로 거리에서 공개 시식회를 하는 등 화제를 모았고,

청와대까지 가서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정희에게 라면을 선보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라면을 처음 먹은 박정희는 "우리 한국인들은 맵고 짭짤한 맛을 좋아하니 고춧가루가 좀 더 들어 갔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그러나 안성탕면이 히트를 치기 전인 80년대 초반까지는 '라면은 매우면 안 된다.' 라는 고정관념이 있었기 때문에

고춧가루는 조금 더 들어간 수준이었지만, 어쨌든 라면이 매우면 물을 많이 마시게 되므로

포만감을 더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박정희 정부의 혼분식 장려운동과도 맞아 떨어졌집니다.

 

꿀꿀이죽을 먹는 시민들을 위해서 라면을 들여왔다는 전중윤 삼양 회장

 

당시 가격은 10원.

김치찌개 백반이 30원, 짜장면이 20원이었던 시절이니 굳이 지금 물가로 치면 2~3천원 꼴로,

지금 물가로는 딱히 비싸지 않아 보이지만 대다수가 빈곤층이었던 당시에는 상당히 고가의 먹거리였다고 합니다.

더군다나 가난한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라면의 대중화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고 하죠.

 

60년대 유년기를 보낸 사람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라면은 <콜라>처럼 손님이 와야 대접하는 음식이었다고 하니

초반에는 그렇게 수요가 크진 않았다고 합니다. 열악했던 60년대에는 라면이 짜장면과 맞먹는 상당한 고급 음식이었으며, 부잣집 사람들이 아닌 이상은 특별한 날에만 겨우 맛볼 수 있는 귀한 음식이라는 인식입니다. 

 

70년대말까지는 도시에도 국수공장이 있는 동네가 많았고, 국수가 라면보다 훨씬 저렴했죠.
그러나 점차 수요가 커지면서 1960년대 중후반 들어서 수 많은 회사들이 라면을 만들기 시작했다가,

1970년대가 다가올 무렵에 삼양과 롯데(농심)만이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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